2016년도 ‘봄날은 간다’고 노래 몇 구절 흥얼거리는데, 아차, 뜨거운 물이 종아리와 발등에 떨어졌다. 얼떨결에 처음 맞이하는 넓은 부위 살갗 통증! 그 순간, 순간마다 아픔에게 말했다. '아플 줄 모르는 기쁜 때가 있었으니, 아플 때가 반드시 생기는 법. 하, 그래, 충분히 기뻤었으니. 지금 아픔은, 하하, 괜찮은 것. 그래, 괜찮아!'
태어나 처음 병원에 입원했다. 평생 가지 않았으면 하는 곳이 병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래저래 바람 지나 듯, 또 머물 듯, 뭐 그렇게 사람이 만든, 사람 사는, 곳이니 어찌하랴. 언젠가 반드시 들어올 곳이었으니, 며칠 지나 나가라고 할 테니, 그저 늦게 온 것에 감사해야 할 뿐.
처음 혈관주사를 팔뚝에 꽂았다. 간호사에게 엄살을 부렸다. 주사 맞을 때마다 부리는 엄살. 일본 정신과 의사가 쓴 소설 <공중그네>가 생각났다. 주인공 이라부로 변신한 의사가 뾰쪽한 것만 보면 벌벌 땀을 흘리며 떠는 조직폭력 대장에게 큰 주사를 놓는 이야기를 하며, 작고 가는 주사를 맞는 동안 함께 웃었다.
웃다 보니 어느새 수액이 몸속으로 들어왔다. 허, 혈관은 아픔을 모르는가 보다. 호랑이 발톱에 잡힌 토끼처럼, 주사기 바늘에 꽉 붙들린 채 가만히 있는 혈관. 참 귀여워 보이는 것은 내 혈관이기 때문이리라. 아니, 사랑이든 돈이든 봄이든 그 무엇에 사로잡히면 아픔을 잊는가? 그럴 듯하다.
잘 때가 언제 왔는지 갔는지도 모르는 사이, 선잠이 들었다. 꿈결인지 옆에서 나는 소린지 구분이 되지 않는 밤, 그런 밤에 봄밤이 또 겹쳤다. 병원도 익숙하지 않거니와, 잠자리가 바뀌어, 깊은 잠 언저리까지는 못 갔다. 가늘게 눈을 뜨며 어둠을 밀어냈다. 개운치 않은 얼굴과 몸이 새삼 무겁다.
가느다라니 눈을 뜨다가, 또옥똑, 몸속에 들어오는 수액 방울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신기하다. 그래, 어제 처음 경험하는 일, 참 모두 신기하다. 이 수액은 순간마다 시간이 되어 내 속으로 들어와, 또 잠시 머물다가, 분명 몸에서 나갈 것이다. 나가서 나의 또 다른 누구의 시간이 될 것. 허, 이렇게 이어지는 것들이 삶이라고 믿어야 할지.
그렇다면, 혹여 어쩌면, 나의 시간이란, 그 누구의 시간들이란, 지구에 우주에 무한대로 널려져 있는 것 아닐까? 수액이며 숨결이든, 음식이든, 몸으로 들어올 때마다 나는 새로 그 무엇을 느껴야 하는 것. 그때마다, 그중에 몇몇이 내 것이 되고, 그리고 언제쯤 나는 그 시간을 그 어디에 던져두는 것. 하, 그래, 그렇게 이 봄엔 새것만 느껴야 의미 있는 일일까.
갑자기 배가 고파온다. 병원에선 식사 시간이 더 빨리 오는 듯. 이것도 새로이 느껴지는 것을 어찌하랴. 그래, 세상 참 특별한 것은 없다. 삶에 특별함이란 없다. 다만, 내 것이기에 그렇게 느끼고 싶을 뿐. 처음이든 몇 번이든 병원이든 그 어디든, 가고 오고 경험하는 일이 우리네 삶인 것을. 때가 되면, 일하고 밥 먹고 돌아다니고. 병원에 집에 그 어느 건물에 들락거리는 일이 삶인 것을. 그러다 배고파지는 것을.
이제라도 가는 봄마다, 보이는 것마다, 인사를 해야겠다. 들리는 그 어떤 소리들에게 반갑다 대답을 해야지. 떠오르는 것들 만날 때마다 웃어야지. 이럴 즈음엔 이곳이 병원이 아니어도 어떠랴! 봄날은 간다고 노래를 더 흥얼거린다 해도 괜찮을 것! 봄은 새것이라고, 나의 봄이, 또 나의 새것이, 여기 지나가고 있다고 웃고 있어도 괜찮을 것. 뭐, 봄이 아니어도, 가끔은 새것이 아니라 해도 웃을 것. 아니, 뭐 좀 어디 아파도 웃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