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5.04 17:37

매달 마지막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이다. 그렇다고 다른 날에는 문화가 없다는 뜻은 아니겠지만, 박근혜 정부의 정부시책 중 '문화융성'의 기치에 따라 생겨난 월간 일정이다. 이날이면 많은 공공 및 사설 기관들의 공연, 전시, 영화 등이 할인을 해주거나 일부 무료공연 등으로 국민의 문화생활에 편의를 제공한다.

나름대로 훌륭한 발상이고 지금처럼 공연 한 편 보기에 10만 원쯤은 우습게 내야 하는 고액요금 현실에서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쉽게도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는 일단 해 질 녘까지 기다려야 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공연, 전시 기관들이 주간에는 기본 수입에 충실하다가 오후 5시나 6시 이후부터만 할인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나마 아예 꿈쩍도 않은 대형 공연 기획사들에 비하면 고맙고 감사한 일이고 친서민정책으로 보여 매달 기다리는 날이기도 하다.

지난 4월 27일, 4월의 문화가 있는 날에는 DDP 즉,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진행되고 있는 '마지막 간송 소장품전'을 다녀왔다. 우리나라 문화계의 거목 간송 전형필 선생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인사이고 그가 설립한 간송미술관의 경우 1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한 번씩 무료 공개를 하는데 이때는 몰려든 인파가 줄로 이어져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곤 한다. 그래서 이처럼 DDP에서 진행하는 전시회는 평일 8천 원의 입장료를 내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기다리지 않고 편하게 볼 수 있는데 이마저 문화가 있는 날에는 50% 할인이 되니 한 달을 손꼽아 기다리다 드디어 다녀온 것이다.

물론 위에서 얘기한대로 오후 6시부터 할인이 되는지라 동대문 근처를 방황하다가 시간 맞추어 들어가 할인을 받았다.

DDP 배움터 2층에서 열리는 '간송전'은 처음 방문하는 사람도 친절한 안내로 쉽게 찾아갈 수 있었으며, 간송 전형필에 대한 설명공간을 따로 만들었고 전체적으로는 일상, 꿈, 풍류로 주제를 나누어 간송 소장 작품들을 분류, 전시하고 있었다. 이미 기사를 읽고 대략의 흐름은 파악하고 있었으나 현장에서 만나는 그림들 80여 점은 우리 고유의 생활상들이 담긴 친숙한 그림들로 혜원 신윤복, 단원 김홍도, 겸재 정선 등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으로 설렜다.

과연 명불허전, 처음 보는 그림들은 아니건만 보고 또 봐도 눈과 마음이 즐겁고 웃음이 나오는 장면, 탄성을 자아내는 모습들을 보니 관람객 모두가 기꺼운 마음으로 돌아보는 듯하였으며, 유명작품 앞에는 여러 사람이 몰려들어 지체되기도 하였다. 물론 사진촬영은 허락되지 않아서 전시작품들을 소개할 수 없지만, 신윤복의 단오풍정이나 주유청강은 낯익어 익숙한 그림들이고 김득신의 야묘도추, 즉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치고 이를 곰방대로 후려치는 모습은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재치스럽고 웃음이 난다.

전시장 마지막에는 신윤복의 미인도가 소박한 듯 조명도 흐린 곳에 걸려있어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서 있었는데 한눈에 보아도 역시 미인이다. 참으로 추측이 난무하여 여자라고까지 전해지던 혜원 신윤복, 그가 그려낸 조선의 미인도는 참으로 멋스럽다. 풍속화에 나오는 질박한 생활모습의 여인네가 아니라 다소곳하며 약간 무표정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묘한 느낌을 자아내는 모습, 분명 기생일 테지만 헤프게 웃거나 천박해 보이지 않고 무표정하지만 청초해 보이는 모습이다. 무심한 듯 애절한 표정이다. 브로마이드 하나라도 사서 곁에 걸어놓고 보고 싶은 여인이다.

천천히 둘러보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그림들은 어느 하나 작품이라고 아니할 것은 없었다. 여러 번 보았거나 설명들을 들어서 익숙한 인물화들이지만 다시 봐도 좋았다. 과연 간송이 가진 작품들은 하나같이 귀하고 소중하다 할 것이다. 다만 전시된 진품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옆에 설명도 읽어야 하는데 진열장의 높이가 지나치게 낮아서 어린아이 눈높이에 불과하니 성인들은 모두 구부려서 읽고 살펴야 한다. 30분 이상 그 자세로 지속해서 보려면 대단한 인내가 필요하였으며 모르긴 해도 목디스크가 있는 사람들은 관람을 피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참으로 촌스럽고 아주 잘못된 진열장이다. 동네 금은방만 가도 손님들 가슴쯤에 눈높이를 맞추어 진열해놓고 보게끔 하는데 이곳은 전문가가 설계, 감리한 것이 아닌듯하다. 간송문화전이 8월 28일 까지라는데 얼른 진열장 높이를 더 올리고 설명 글은 아예 눈높이까지 올려붙이는 게 좋을듯하다.

아무튼 오랜만에 흡족한 풍속인물화들을 감상하였으며 이제 평일에는 다시 8천 원으로 보아야 하는데 할인을 받으려면 다음 '문화가 있는 날'을 기다리면 될 일이다.

조선일보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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