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선 마피아가 짙은 선팅… 한국선 의원·장관이 보란듯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이 있던 지난 3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당선자들을 태운 검은색 에쿠스와 제네시스 차들이 속속 도착했다. 대부분 차량의 앞유리창이 검은색으로 짙게 선팅돼 있어 차체와 유리창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날 국회 본관 앞에 당선자들을 내려준 차량은 총 94대였다. 이 중 80대 이상은 운전석 앞 5m 거리에서도 운전자의 얼굴 윤곽을 전혀 식별할 수 없었다. 옆유리의 선팅은 더욱 짙었다. 옆유리로 차량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차량은 한 대도 없었다. 새누리당 J 당선자는 "왜 짙은 선팅을 했느냐"고 묻자 "개인 소유가 아닌 관용차라 신경 쓰지 못했다"며 급히 국회 본관으로 들어갔다. H 당선자 보좌관은 "새 차를 뽑을 때 영업사원이 선팅해준 대로 타고 다닐 뿐 더 짙게 선팅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국회의원과 장·차관 차량도 불법 선팅

다음 날인 4일 오전 10시 국회 본관 앞에 정차한 더불어민주당 당선자 차량 22대 가운데 5m 앞에서 운전자 식별이 가능한 차량은 2대뿐이었다. 더불어민주당 H 의원은 "선팅 규정에 대해 잘 몰랐다"며 "법을 어긴 것이라면 고치겠다"고 말했다. 본지가 수도권의 고속도로 휴게소와 중고차 매매 상가 등에서 차량 200대를 조사했을 때, 앞유리의 선팅 규정을 위반한 차량은 절반에 가까운 96대(48%)였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당선자 차량의 선팅 위반율은 육안으로 봐도 일반인들의 평균치를 훨씬 넘었다.

 

정부 부처 장관들도 선팅을 짙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국무회의와 경제관계장관회의가 잇따라 열린 지난달 28일 정부세종청사에 도착한 7개 부처의 장관·차관 차량의 선팅도 모두 짙었다. 취재팀이 한 차관의 차량 옆유리를 측정한 결과, 가시광선 투과율이 13.8%였다. 신문지의 가시광선 투과율(11%)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정부청사관리소 관계자는 "장·차관 차량뿐 아니라 정부의 관용차 대부분이 바깥에서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선팅을 한다"고 말했다.

◇운전자 62%가 "다른 차량 선팅 때문에 불편"

 

본지가 지난달 8~10일 자동차 소유자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0%가 "선팅 농도에 대한 규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앞유리의 기준치(가시광선 투과율)가 70% 이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응답자는 26명(13%)에 그쳤다.

"다른 차량의 선팅으로 불편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62%였다. 주로 "운전 중 불쾌한 일을 겪었는데 상대 운전자가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24％), "앞이나 좌우 차량의 선팅 때문에 건너편 차량의 상태를 살피지 못해 불편했다"(23%), "수신호를 전할 수 없어 안전운전에 위협이 됐다"(14%)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응답자의 84%는 "내 차량에도 선팅을 했다"고 답했다. 다른 차량의 짙은 선팅으로 불편을 겪으면서도 정작 본인 차량에는 선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교통 전문가는 "사회지도층이 권위의 상징처럼 차 유리에 짙은 선팅을 하고 다닌 것이 자연스럽게 전 국민에게 전파됐다"며 "선팅 규정 위반이 워낙 보편화됐기 때문에 단속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