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일문일답 전문]
-한국 18세기 학회에서 발표한 에도(도쿄)의 쇼핑, 특히 조선 인삼·우육환 등이 흥미로웠다. 당시 일본이 한국을 바라본 관점을 요약하신다면?
일본의 지배 계급은 한반도에 대한 전통적인 우월의식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한반도 국가들을 서쪽 번국, 즉 서번(西蕃)으로 인식했지요. 한편, 주자학자들은 주자학의 선배 국가로서 존경심 내지는 동질감을 지녔습니다.
서민들은 “서민들의 수퍼스타” 몇 백 년 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건너갔다 왔다는 바다 저편 먼 나라, 수 십 년에 한 번씩 수 백명 단위로 일본을 찾아오는 진기한 사람들, 이라는 이미지를 지녔습니다.
-18세기 학회, 조선일보 북칼럼 연재, 경향신문 ‘한국이 모르는 일본’ 연재 등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당신의 관심·세계관을 설명해 주신다면.
사람들은 왜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서로 오해하는가? 왜 신·이념과 같은 것을 믿어서 전쟁을 일으키는가? 왜 전쟁을 기억·기록하고, 어떻게 자기 집단의 전쟁행위를 정당화하는가? 왜 그 기억·기록의 내용은 서로 충돌하는가? 기억·기록은 어떻게 현실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 이러한 문제의식이 첨예하게 나타나는 것이 일본, 그리고 한일관계입니다. 이 문제의식을 캄차카반도에서 인도차이나반도까지 이어지는 ‘유라시아 동해안’이라는 지리적 배경 속에서 검토하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공부는 당신에게 무엇을 주나요? 그리고 당신의 공부는 사회에 무엇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지금의 공부는, 무엇보다, 재미있습니다. 제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즐겁습니다. 그리고, 사회에 대해서는, 늘 감사함을 느낍니다. 사회의 소속원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성과물의 일부를 제공해 주시기에 저같은 연구자들이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저 나름대로, 사회에서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 평소에 돌아볼 기회가 적은 사항들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고, 그 결과물을 다시 사회에 보고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도서관이나 관공서, 회사 등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오면 가급적 수락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구서와 교양서를 균형있게 집필하려 합니다.
강연을 할 때에는 제가 수집한 고문헌을 제 체력이 닿는대로 많이 가져가서 보여드리려 합니다. 큰 의미를 전달하지 못할 터인 제 주장보다는, 고문헌 원본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시는 것이, 한국 시민들에게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문헌 원본들은 저의 길을 열어준 것처럼, 이들을 보고 만지는 시민들에게도 인스피레이션을 주리라 믿습니다.
제가 수집하는 고문헌의 코어는 임진왜란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관계 자료입니다. 한국에서 한 사람 정도는 이 테마의 컬렉션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이런 수집 활동을 윤허해주는 아내, 그리고, 수집 활동을 도와주는 일본의 이치노헤 와타루(一戸渉) 선생 덕입니다. 이치노헤 선생은 "김 선생이 문헌에 입각한 실증적인 연구를 하는 한 언제든 도와주겠다"라고 말하더군요.
-당신의 포지션이 흥미롭습니다. 문학도 아니고 역사도 아닌, 이런 선택에 대한 계기와 변이랄까요.
전쟁이라는 것이 워낙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을 종합한 성격을 지닌 사건이다 보니, 역사학계와 문학계, 사상사학계에서 다루는 대상과 이룩한 성과들을 모두 봐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역사학에서 ‘사료’와 ‘비(非) 사료’를 나누는 것이나, 문학에서 ‘문학적인 텍스트’와 ‘문학적이지 않은 텍스트’를 나누는 것이나, 저에게는 모두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전근대 사람들이 문헌을 다루는 방식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전근대 사람들은 어떤 문헌을 보면서, 오늘날의 연구자들과 똑같은 관점에서 사료와 비사료, 문학적인 텍스트와 비문학적인 텍스트를 나누어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사료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늘날에는 문학계에서 다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당시에는 문학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던 문헌이 오늘날의 문학계에서는 잊혀진 경우도 많이 확인합니다.
또 전쟁이 발생했을 때, 발생 당시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 사건의 전체 모습을 파악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그 전쟁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수많은 사람이 남긴, 서로 충돌하는 수많은 텍스트들이 시간 속에서 취사선택되고 집대성되는 과정을 거친 것입니다. 그 과정 과정마다 사람들이 그 전쟁에 대해 이해하는 방식은 서로 다릅니다. 전쟁이 발생했다고 하는 것, 전쟁의 구체적인 사실들은 팩트로서 존재하지만, 각 시대와 각 공간에서는 이 팩트가 공유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수많은 문헌들이 존재합니다. 이들 문헌들을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흑과 백으로 파악하는 게 아니라, 100%의 팩트를 지닌 것부터 순수하게 허구적인 것까지 무지개의 스펙트럼처럼 늘어서 있다고 하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강연을 할 때마다 가장 처음에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가 임진왜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옛날 사람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임진왜란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와 1600년대·1700년대·1800년대·1900년대 사람들이 갖고 있던 이미지는 모두 다르다고요.
-매파와 달리, 비둘기파는 역사에서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비둘기파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세상에는 서로 강하게 대립되는 두 견해가 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극좌와 극우, 한국식으로 말하면 “빨갱이”와 “친일파”가 그렇겠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진실(이랄까 사실)이라는 것은, 또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두 개의 극단 중간 어딘가에 놓여 있고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던 무지개의 스펙트럼 같은 거죠. 그런 것이 이 세상이고, 그러한 이 세상의 모습을 대변·대표·상징하는 비둘기파들의 목소리에 저는 귀가 기울여집니다.
-우리 학계에서 김 선생의 특이성, 존재 정당성을 서슴지 않고 표현해주신다면.
선명한 위치에 서는 것을 선택하는 대신에, 여러가지 선명한 노선·주장·위치들의 가운데 어디쯤에 서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거워하는 것이 제 연구의 특이성이라고 한다면 할 수 있겠습니다.
-자유주의자는 외롭다는 말들을 합니다. 좋든 싫든 한 진영을 선택해야 발언과 영향력, 자리과 계급을 보장받는다는 것. 스스로에게 물어보신다면?
이 두 가지를 묶어서 말씀을 드리자면, 의식적으로 섶을 진 것도 아니고, 의식적으로 외로움을 선택한 것도 아닙니다. 연구를 한다고 의식하기 시작한 뒤로 20년이 조금 안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만, 제가 해온 연구를 돌이켜보니 ‘내 연구는 그러한 성향이 있구나’하는 것을 요즘들어 자각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성향의 연구를 하게 되는 걸까’ 저 스스로에 대해 품고 있습니다.
-한반도 밖의 시각이 중요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외면합니다. 외면하는 그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제 연구를 통해 사람들을 설득할 의사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성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경험을 통해서는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타산지석”이라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간혹 그들이 바뀐다면, 그것은 그들이 존재의 근본적인 위협을 느낄만한 큰 외부의 충격이 있을 때뿐입니다. 다만, 앞으로 활동을 하게 될 10대·20대 분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이렇게 넓으면서도 또 좁으니까, 겁먹지 말고 자꾸자꾸 밖으로 나가시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한국 사회의 일각에서는 해외 여행가는 걸 외화 낭비한다면서 뭐라고 하는데, 저는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꾸 나가야 합니다. 나가보면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국정벌전기의 세계’는 출판사에서 언제 출간되나요?
일본 가사마쇼인에서 2010년에 출간한 ‘이국정벌 전기의 세계’는 올해 8월 초에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일본의 대외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됩니다. 이 책은 네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임진왜란, 1609년 일본의 유구왕국(오키나와) 정복, 일본의 백제 구원군 파견, 러시아·아이누·일본의 북방 삼국지.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와서 한국 문헌을 좀 더 많이 보게 되었고, 임진왜란 문제에 대해 이 책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거나 새로이 알게된 것들이 있어서, 이번 6월부터 9월 사이에 그 내용을 정리할 계획입니다. 내용상 ‘일본의 대외전쟁’의 속편이 될 이 책의 제목은 ‘한일 임진왜란 문헌의 계보’로 할 생각이고, 내년 2월에 열린책들에서 간행될 터입니다. 그 후에는 일본어로 번역해서 ‘이국정벌 전기의 세계’의 속편으로서 가사마쇼인에서 출간할 계획입니다. 또, 주간조선에서 연재해서 지난 해 메디치미디어에서 출간한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도 일본 출판사와 번역 출판 문제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본어로 쓴 책을 한국어로 옮기고, 한국어로 쓴 책을 일본어로 옮기고,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여기로 언어를 옮기는게 연구자로서의 내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구나 하는 소회를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 7~8년 뒤에는 극동유라시아라는 배경에서의 관계를 검토하는 연구서를 집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일본어, 한문, 중국어, 만주어를 독해 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러시아어를 배우고 계시고요. 러시아어 실력은 어디까지 도달하셨는지, 또 어떻게 공부했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말씀드려야 할 것은, 언어학자 정광 선생님이나 역사학자 김호동 선생님을 비롯해서 세계의 수많은 선학들은 여러 개의 언어를 구사해서 연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실제로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언어는 아직 한참 부족합니다.
저는 한문을 문어 중국어라고 부르지만, 문어 중국어와 현대 중국어는 제가 필요한 문헌을 읽을만큼만 공부했습니다. 그 이상 들어가면 무궁무진한 중국학의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많은 분들이 이미 그 방면의 연구를 하고 계시기 때문에 굳이 저까지 뛰어들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그 대신에 선택한 것이 만주어, 러시아어, 네덜란드어입니다. 한국과 다른 나라들의 연구를 살펴보았을 때, 오호츠크해 연안, 동부 시베리아 등을 포괄하는 극동유라시아 지역과 북태평양 지역에 대한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제가 파고들어갈 여지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2012년부터 만주어, 2014년말부터 러시아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만주어는, 임진왜란과 정묘·병자호란에 대한 일본과 만주 문헌을 비교하기 위해서 공부했습니다. 그 결과로 논문을 한 편 썼습니다. 다만, 저의 직접적인 관심사와 관련된 만주어 문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최근에는 만주어 공부를 소홀히 하는 느낌입니다.
러시아어 학습에 대한 전망은, 제가 일본어를 공부한 게 20여 년이고 문어 일본어를 15년 정도 공부해서 무언가 성과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10년 조금 안되었으니 러시아어도 그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겠는가 하고 느긋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시간에 맞는 학원 수업이 없어서, 혼자서 러시아어 회화와 문법책을 보고, 러시아어 노래를 듣거나 페이스북으로 러시아 뉴스를 받아보고 있습니다. 구글 번역기와 어플리케이션이 독학하는데 큰 힘이 됩니다. 그리고 3년 쯤 전부터 러일관계에 대한 논문을 몇 편 쓰면서 워밍업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장모님이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사온 어린이 동화를 보았더니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러시아어 공부하고 관련 서적을 읽다보니까 재미가 있어서, 애초에 일문과 대신 러시아어문학과에 진학했어도 즐거워했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그리고 시베리아와 북태평양 지역에 대한 초기의 중요한 문헌이 네덜란드어로 많이 집필되어 있다는 사실을 얼마전에 깨달아서, 향후 러시아어 공부가 어느 정도 틀을 갖춰지는 대로 네덜란드어를 공부하려 합니다. 그렇게 해서 50대가 지나고 나면, 그 뒤에는 ‘시 에다’ ‘스노리 에다’ ‘뵐숭아 사가’같이 제가 가장 사랑하는 책들이 적힌 언어인 아이슬란드어 공부를 하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요즘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일에 대해 설명해주시길.
7월이면 만으로 3살이 되는 딸아이 단비를 재우고 어린이집 보내는데에 가장 많은 시간과 신경을 쏟고 있습니다.
연구에 대해서는 ‘한일 임진왜란 문헌의 계보’ 집필을 시작하기 전에, 그 동안 사두기만 하고 읽지 못한 몽골인민공화국(외몽골), 내몽골, 만주국에 대한 일본쪽 연구서를 읽어버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외몽골은 러시아·소련의 힘을 빌려서 독립을 달성했지만, 내몽골은 러시아·소련과 중국, 일본이 정치적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독립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만주국은 일본이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허수아비로 옹립한 괴뢰국이지만, 내몽골 사람들은 그래도 독립국을 만든 만주국을 부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일본의 영토적 야욕을 알면서도, 다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의 관동군의 힘을 빌려서 내몽골 독립국을 만들려 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만주로 진출한 한국인들과 충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1945년에 일본이 패망하면서 이들 내몽골 독립운동가들은 “중화민족의 배신자”로 몰려서 처형되거나 장기 투옥됩니다. 동족이 세운 몽골인민공화국으로 탈출한 사람들은 ‘일본 스파이’로 몰립니다. 몽골민족의 통일과 중국으로부터의 독립. 이들이 지닌 양대 목표였습니다. “왜 이것은 독립운동이 아니란 말인가?” 이 책들을 읽으면서 계속 되뇌이고 있는 명제입니다.
조선과 일본 사이에 낀 쓰시마의 외교관으로서, 양국 지식계급 모두에서 찬밥 취급을 받은 아메노모리 호슈, 조선을 위해 뭘 좀 해보려다가 쫓겨났고 지금은 한국인들에게 무능한 사람으로만 기억되고 있는 묄렌도르프, 일본의 힘을 빌려서 독립을 달성하려 한 내몽골의 덕왕 뎀치그돈로브와 바부쟈브, 러시아 혁명 당시 시베리아에 잠시 존재했던 극동공화국이라는 나라의 수장이었던 크라스노쵸코프…. 이런 사람들에 대한 책을 쌓아두고 읽고 있습니다. 5월 중에 이런 독서를 하고 나면, 6월부터 임진왜란에 대한 책을 쓸 때, 좀 더 다른 퍼스펙티브가 집필중에 작용하리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