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크스바겐에겐 너무 만만한 한국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 최기식)는 폴크스바겐이 국내로 차량을 들여오면서 연비(燃比) 등 각종 시험 성적서 48건을 조작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고 13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폴크스바겐은 지난 2010년부터 최근까지 아우디 A4 등 20개 차종에서 연비 시험 성적서 48건을, A8 차종에서 배출가스 시험 성적서 2건을, 골프 등 4개 차종에서 소음 시험 성적서 4건을 조작해 환경부에 제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폴크스바겐은 심사가 서면(書面)으로만 진행된다는 점을 악용해 이미 심사가 끝난 차량 모델의 시험 성적서를 다른 모델의 성적서로 꾸며 제출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폴크스바겐이 우리 정부에 제출한 서류 중 조작으로 확인된 것은 139건으로 늘었다.

검찰은 이날 윤모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인증 담당 이사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각종 시험 성적서를 조작한 이유와 독일 본사의 지시를 받고 한 일인지 등을 조사했다. 지금까지 검찰 조사를 받은 한국 지사 관계자들은 '독일 본사에 시험 성적서를 요구했는데 보내주지 않아서 조작을 하게 됐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해 미국에서 처음으로 드러난 것으로 알려진 폴크스바겐의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을 국내 당국은 이미 2011년 적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과 환경부 등에 따르면 2011년 있었던 환경부의 차량 결함 확인 검사에서 폴크스바겐 등 일부 차량 제조사가 배출가스 재순환장치(EGR)를 조작한 사실이 적발됐다. 당시 폴크스바겐 차량은 실험 주행에선 EGR이 정상적으로 작동했지만, 에어컨을 끄거나 주행 조건이 바뀌면 EGR이 중단돼 질소산화물이 다량으로 배출됐다고 한다.

환경부는 당시 이를 규제하는 법규가 없다는 점을 감안해 적발된 제조사들의 이름은 공표하지 않고 해당 회사에 원인 규명과 리콜(제품 회수와 수리) 등을 요구했다. 당시 적발됐던 현대차는 수십만대를 리콜했다. 그러나 폴크스바겐은 리콜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환경부가 요구한 서류도 제출할 수 없다고 버텼다. 검찰은 독일 본사가 한국지사에 '한국 정부의 자료 제출 요구 등에 응하지 말라'고 지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미국 등 세계 주요 시장에서는 판매 부진에 시달리고 있지만, 한국에서만은 여전히 잘 팔리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5월까지 가장 많이 팔린 수입 자동차는 폴크스바겐 티구안(3254대)이다. 이어 메르세데스-벤츠 E 220 블루텍(3236대), 폴크스바겐 골프 2.0 TDI(2932대), BMW 520d(2752대), 아우디 A6 35 TDI(2003대) 순이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입차 상위 5개 모델 중 3개가 폴크스바겐과 아우디 차량인 것이다. 폴크스바겐은 지난해 11월 대대적인 할인 판매를 통해 국내 수입차 판매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폴크스바겐은 미국에서는 문제가 불거진 직후인 지난해 9월 곧바로 사과하고 대규모 리콜을 다짐했다. 폴크스바겐 측은 미국 정부 등과 소비자 보상 문제 등이 포함된 최종 합의안을 협의해 왔고 오는 21일(현지 시각)쯤 이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직 문제가 된 차량의 리콜 계획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