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섬'에 터 잡았네, 나는야 열정 장사꾼

서울 지하철 1호선 남영역과 4호선 삼각지역, 6호선 효창공원역 옆 사이 삼각형 모양의 땅이 있다. 삼각형의 세 변은 용산 KCC웰츠타워 아파트, 이안용산아파트, 이안 용산프리미어, 용산더프라임 등 지난 10년 내에 지은 30층 이상의 주상복합 건물이 둘러싸고 있다. 하늘에서 보면 2~3층의 저층 건물들이 들어선 이 삼각형의 땅은 빌딩으로 둘러싸인 섬 같다. 섬의 이름은 '열정도(熱情島)'다.

지난 4일 오후 용산구 원효로 1가에 있는 열정도는 무인도처럼 조용했다. 한때 인쇄 공장이 많이 들어선 골목이었지만, 최근에는 3분의 1 이상이 이곳을 떠났다. 골목마다 불빛이 새어나오는 곳은 주꾸미집, 치킨집, 감자집, 고깃집, 커피숍과 같은 식당과 카페였다. 이 중 규모가 가장 큰 주꾸미집의 미닫이문을 열자 한 청년이 "어서 오십쇼"라고 외쳤다. 저녁식사 시간이 안 됐는데, 식당 안은 왁자지껄했다. 손님을 맞느라 분주한 종업원의 등에는 '크게 될 놈, 뭘 해도 될 놈'이라는 글귀가 박혔다〈작은 사진〉. 벽에는 '성실이 답이다'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관광객 몰려들지 않는 땅을 찾아

열정도는 '장사'를 하고자 하는 20~30대 젊은이들이 2014년에 만든 곳이다. '열정이 가득한 섬'이란 뜻의 이름은 이들이 붙인 것이다. 대부분 먹는 장사다. '청년장사꾼'이란 회사를 차린 이들은 이곳에 일곱 개의 가게를 열었고, 지금은 그중 다섯 개를 운영 중이다. 열정도가 상권을 형성한 뒤에 다른 젊은이들이 이곳에 몰려들었다. 지난해부터 옷가게, 카페, 식당이 10여개 더 늘어났다.

'열정도 프로젝트'를 기획한 청년장사꾼의 김연석(34) 대표는 이태원 우사단길과 경복궁 옆 서촌에서 감자집을 성공시켰다. 그는 재작년부터 새로운 장사를 시작할 동네를 찾아다녔다. 그가 원한 곳은 삼청동, 신사동 가로수길, 서촌, 연남동처럼 관광상권이 될 만한 동네가 아니었다. 대학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한 그는 "최근 인기가 많은 익선동을 고려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떠서 임대료가 오를 것 같았다. 지역 주민과 직장인들이 주 고객이 될 수 있는 곳을 찾았다"고 했다.

2014년 김 대표는 스쿠터를 타고 남영역을 지나다 주상복합 건물 사이의 어두운 골목을 발견했다. 재개발이 끝나고 남은 땅이 쭉 펼쳐져 있었다. 주상복합 단지가 들어서고 난 뒤, 인쇄공장 단지였던 이곳의 재개발은 지연됐다. 이미 이 자리를 떠난 공장이 많았다. 김 대표는 "아파트 단지와 사무실이 많이 들어섰으니 지역 주민을 손님으로 끌어들이는 장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다음 날 부동산에서 가게 여섯 곳의 임대 계약을 마쳤다. 여기에 들어간 돈을 다 합쳐도 홍대나 이태원에 가게 하나 내는 돈과 비슷했다. 열 평짜리 가게 기준, 월 임대료가 50만~70만원 수준이었다.

◇장사로 잘 먹고 잘살자

열정도의 가게들은 개성이 강하다. 주꾸미집은 '주꾸미'를 활용한 말장난과 복고풍 인테리어를 내세운다. 찜닭을 판매하는 가게 상호는 '치킨싸우나'다. 김 대표는 건축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청년장사꾼'이란 회사로 외식업을 시작했다. 친구와 둘이서 시작했지만 지금 직원만 40명이다. 그는 "장사가 잘되려면 그 지역에 들어가서 먹고살면서 일해야 한다. 지역 주민, 직장인과 가장 빨리 소통할 수 있는 게 음식점"이라고 했다. 그는 "연남동이나 익선동처럼 너무 빨리 알려질까 봐 걱정했는데, 아직은 괜찮은 것 같다. 근처에 사는 주민이나 직장인이 손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저녁이면 이 골목에는 야시장이 선다. 푸드트럭이 오고, 사람들이 수공예품을 내다 판다. 5000명 내외가 찾는다.

열정도 직원들은 거의 뛰어다니다시피 가게 안을 돌아다니고 목소리는 우렁차다. 김 대표에 따르면 이곳 직원들 대부분의 최종 학력이 고졸이다. 그는 말했다. "저희 직원들은 이곳이 마지막 직장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일해요.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치열하게 일하면 잘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가 장사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