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6.15 03:00

[소수를 위한 '니치 향수' 인기]

香의 남녀 구분 사라지고 향초·디퓨저 등 인테리어로 활용
브랜드보다 조향사에 주목… 유명인 내세운 광고도 안해

'응답하라 1988'이 한창 인기를 얻었던 지난해 말 tvN 김석현 기획제작1국장은 이 드라마에 아쉬운 점이 있다고 했다. "시대는 냄새로 기억된다. 1988년의 냄새, 즉 하수구의 악취와 최루탄의 매캐한 냄새를 TV 화면으로 담아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요즘 아이들은 그때보다 훨씬 더 좋은 냄새를 맡고 사니 부럽다"고도 했다.

요즘 사람들이 맡는 냄새란 무엇일까. 훗날 2016년을 떠올리게 할 냄새는 무엇일까. 아마 냄새(smell)보다는 향내(scent)에 더 가까울 것이다. 2010년 이후 화장품·패션·디자이너 브랜드 향수가 아닌 일명 '니치 향수'가 각광을 받으면서 향(香) 시장이 확대됐다. 니치 향수란 '소수의 사용자를 위해 만든 향수'다. 2000년대 중·후반 '아쿠아 디 파르마' '크리드' '딥디크' 등이 한국에 들어온 이후 해마다 10개 내외의 니치 향수 브랜드가 수입되고 있다. 2008년 한국에 소개된 니치 향수 '딥디크'의 경우 2013년부터 꾸준히 두 자릿수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키워드 정보] 니치(Niche) 마켓팅이란?
조 말론의 ‘허브 가든’ 컬렉션의 광고 사진. 유명 배우나 모델을 쓰지 않고, 향수의 원료와 향을 짐작하게 하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조 말론의 ‘허브 가든’ 컬렉션의 광고 사진. 유명 배우나 모델을 쓰지 않고, 향수의 원료와 향을 짐작하게 하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조 말론 제공
[키워드 정보] 니치(Niche) 마켓팅이란?

①브랜드가 아니라 제조자가 중요

니치 향수가 국내로 들어오기 전까지 향수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샤넬'이나 '에스티 로더' '마크 제이콥스' 같은 화장품·패션·디자이너 브랜드였다. 심지어 제니퍼 로페즈나 브리트니 스피어스처럼 유명인 이름을 딴 향수까지 출시됐다. 최근 브랜드보다 더욱 주목받는 건 조향사나 기획자다. '메종 프란시스 커정'은 조향사 이름을, '프레데릭 말'과 '세르주 루텐'은 기획자 이름을 딴 향수다. '프레데릭 말'의 경우 향수마다 조향사 이름과 사진을 싣는다. '프레데릭 말' 수입사 BMK는 "선호하는 조향사의 향수를 골라 구매하는 고객이 있을 정도로 충성도가 높다"고 했다.

②성별 구분이 없다

화장품·패션·디자이너 브랜드 향수의 경우 대부분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나뉘어 있다. '샤넬'의 '알뤼르'는 여성용이고 '알뤼르 옴므'가 남성용이다. 향도 확연히 구분될 만큼 서로 다르다. 하지만 남녀를 구분해 출시된 니치 향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프레데릭 말'의 '콜론 엉데라빌'의 경우 가벼운 꽃향기가 나는데도 남녀 소비자 비율은 비슷하다.

③연예인·모델을 내세우지 않는다

최근 패션 잡지와 버스 정류장 광고판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었던 얼굴 중 하나는 할리우드 배우 조니 뎁이었다. 그가 패션·화장품 브랜드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남성 향수 '소바주' 모델로 나섰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 들어온 니치 향수 브랜드 중 연예인을 내세운 광고를 한 곳은 한 군데도 없다. '세르주 루텐'의 파리 부티크 매니저인 알라위 술레이만은 "유명인 이미지에 기대지 않는 것이 니치 향수의 특징"이라며 "니치 향수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나만의 향'을 중시해 유명인이 대변하는 향을 오히려 싫어한다"고 했다.

④패션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

니치 향수 브랜드가 향수와 함께 들여온 향초, 룸 스프레이, 패브릭 스프레이(침구·천에 뿌리는 방향제), 디퓨저(확대 관에 향수를 담아 향기를 퍼지게 하는 인테리어 소품) 같은 생활용 방향 제품도 인기다. '딥디크'의 경우 생활용 방향 제품의 매출은 2014년부터 매년 20~30%씩 늘어나고 있다. 향이 인테리어이자 생활의 일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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