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돈 안 된다고 호기심 꺾지 마라"

"1950~60년대 수많은 과학자가 유전자(DNA)의 정체를 밝히는 데 도전했습니다. 무슨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냥 호기심 때문입니다. 그렇게 발견한 DNA는 생명의 원리를 알려줬고, 암과 같은 질병 치료법을 찾게 해줬습니다. 이것이 과학의 힘입니다."

세계적 물리학자 리사 랜들(53)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14일 서울 고려대에서 열린 방한 간담회에서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고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꺾는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과학의 가치는 현재가 아닌 미래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려고 하다 보면 경제적 가치를 따지는 것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랜들 교수는 프린스턴대·MIT·하버드대에서 각각 종신 교수직을 취득한 최초의 여성 이론물리학자로, '물리학의 여신(女神)'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여성'으로 불린다. 1999년 우주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것 이외에 여분(餘分)의 차원이 있다는 '랜들-선드럼 모형'을 제시하면서 전 세계 물리학계의 스타가 됐다.

과학자로는 이례적으로 시사 주간 타임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人)'에 선정됐고, 저서 '숨겨진 우주'는 뉴욕타임스 '2005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그녀는 신간 '암흑물질과 공룡'의 한국어판 발간과 '새로운 물리학 한국연구소(NPKI)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했다.

'암흑물질과 공룡'에서 랜들은 6600만년 전 공룡 멸종에 대한 새로운 학설을 제시한다. 그녀는 "계산 결과, 우주의 26%를 차지하는 '암흑물질'이 3000만~3500만년 주기로 태양계 바깥에 있는 혜성(彗星)의 궤도를 바꿔 지구에 충돌하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이 주기는 지구 상에 있었던 다섯 번의 대멸종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공상과학(SF) 같은 얘기지만 2014년 세계 최고의 물리학 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에 발표해 공인받은 이론이다. 물리학자들은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은 우주의 5%에 불과하다고 추정한다. 나머지는 빛과 반응하지 않아 볼 수 없는 암흑물질과 우주를 팽창하게 하는 미지(未知)의 암흑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고 여긴다.

랜들 교수는 "암흑물질의 존재는 관측과 실험을 통해 입증됐고,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 과학자가 암흑물질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언젠가는 찾아낼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흔치 않은 여성 물리학자로서 받는 관심에 대해선 "스스로 '여성 과학자'가 아니라 '과학자'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여성 과학도의 귀감이 되는 것은 보람"이라고 답했다. 그녀는 "이번 방한이 한국의 여성 과학도들에게 힘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랜들 교수는 "물리학은 천재들의 학문아니냐"는 물음에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다. 물리학은 어렵고, 물리학자가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녀는 "하지만 쉬웠다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없다. 어렵기 때문에 도전하는 가치가 있고 그 과정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물리학을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랜들 교수는 "모르면 이유가 있다는 점을 잊지 마라"면서 "기초 없이 단계를 뛰어넘는 과학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