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들 보던 책 지금은 못 읽는 게 안타까워"

"유학의 기본인 사서(四書)는 주자(朱子)가 완성했지만 그 이후 발전한 다양한 학설을 적극 수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나온 여러 견해 중에서 학문적으로 경청할 만한 것을 소개하고 제 생각을 덧붙였습니다."

원로 한학자 한송(寒松) 성백효(成百曉·71) 해동경사연구소장이 '부안설(附按說) 대학·중용집주(集註)'(한국인문고전연구소)를 최근 펴냈다. 2013년 나온 '부안설 논어집주', 2014년 간행된 '부안설 맹자집주'에 이어 성씨가 필생의 작업으로 진행해 온 '부안설 사서집주'가 완간된 것이다. '안설(按說)'은 '여러 학설을 살펴, 내 설을 말한다'는 뜻이다.

'사서집주(四書集註)'는 중국 남송 때 유학자 주희(朱熹·1130~1200)가 논어·맹자·대학·중용에 대한 주석을 정리해서 펴낸 것으로 유학의 이념을 담고 있어 전근대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필독서였다. 1990년대 초 한문을 배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스테디셀러가 된 '논어집주' '맹자집주' '대학·중용집주' 번역본을 펴냈던 성씨는 "주자 이후의 학설을 담고 내 생각도 들어 있는 책을 만들어달라는 주위의 권유에 못 이겨 작업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겨우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성백효씨는 신학문에 강한 거부감을 가졌던 아버지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고 어려서부터 한학에 몰두했다. 아버지에게 배우다 익산에서 월곡(月谷) 황경연(黃璟淵), 부여에서 서암(瑞巖) 김희진(金熙鎭) 선생을 사사하면서 농사를 짓던 그는 1977년 봄 서울로 올라와 민족문화추진회 부설 국역연수원 4기로 입학하면서 한문 번역과 교육의 길에 들어섰다. 당대의 기라성 같은 한학자들인 교수진으로부터 '선생보다 나은 학생'이라는 평을 들었던 그는 그해 여름부터 학생이면서 동시에 민족문화추진회 전문위원으로 고전 번역에 참여했다. 이어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에서 한문사전 편찬과 병서(兵書) 번역에 종사하는 한편 민족문화추진회와 서울대 등에서 한문과 한학을 가르쳤다. 1997년 민족문화추진회에 교수로 돌아와 2012년까지 재직했다. 그동안 펴낸 번역서는 중국 고전과 한국 문집·역사서 등 70여 종에 이른다.

이번에 나온 '부안설 대학·중용집주'는 조선 후기 성리학의 양대 학파인 호론(湖論)·낙론(洛論)의 대가인 호산(壺山) 박문호(朴文鎬)의 '대학·중용상설(詳說)',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대학·중용기의(記疑)'를 중심으로 장절마다 중국·한국 학자들의 학설을 살펴본 뒤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또 다산 정약용이 주자와는 완전히 다른 입장에서 쓴 '대학공의(公議)'와 율곡 이이의 '대학언해(諺解)' '중용언해' 등을 부록으로 붙여 내용의 이해를 도왔다. 성씨는 "대학·중용은 본문 분량이 논어·맹자보다 훨씬 적지만 성리학의 기초가 되는 이론들이 들어 있어 주석이 많아지고, 중국보다 한국에서 더욱 깊이 논의돼 우리 학자들의 주장이 빛을 발한다"고 말했다. 앞서 펴낸 '부안설 논어집주' '부안설 맹자집주'는 다산 정약용, 농암 김창협 등 한국 학자들과 한나라의 공안국(孔安國), 현대의 양보쥔(楊伯峻) 등 중국 학자들의 견해를 두루 소개했다.

'전통한학의 마지막 세대'인 성백효씨는 "100년 전 조상이 보던 책을 요즘 후손이 전혀 읽지 못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한국밖에 없다고 하더라"며 "전통은 한번 끊어지면 다시 잇는 것이 어려운 만큼 1500년 이상 지속돼 온 우리 학문이 단절되지 않도록 누군가는 관심을 갖고 다양한 보존·발전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