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 몰려온 詩 낭독의 밤

배우 박정자, 손숙, 윤석화, 안성기, 유인촌, 김상중이 시 낭송회에 한꺼번에 나타났다. 지난 16일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낭독회 '시 읽는 저녁'이었다. 형제 시인 박용재·박용하의 공동 시집 '길이 우리를 데려다주지는 않는다'(문학세계) 출간을 맞아 열린 모임이었다. 박용재 시인이 20년 넘게 연극·영화 기자로 활동하며 희곡도 쓰고, 문체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도 지낸 인연 덕분에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시 낭송에 참여했다. 특히 여배우들은 7월에 공연할 연극 '햄릿'을 연습하다가 달려왔다고 했다. 시인 김종해, 함성호 등도 출연했다.

박용재 시인은 1984년, 동생 박용하 시인은 1989년 각각 등단해 활동해왔다. 서정주-서정태, 김종문-김종삼, 김종해-김종철 형제 시인의 뒤를 이어 보기 드문 '시인 혈족(血族)'이다.

'햄릿'에 출연할 윤석화는 "예순 살이 넘어서 오필리어 역할을 맡은 여배우는 아마 처음이라서 기네스북에 오를 것 같다"고 우스개를 던진 뒤 박용재 시인의 시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를 낭송했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TV 프로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 중인 배우 김상중은 "제 직업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며 박용하 시인의 동시 '저녁'을 엄숙한 목소리로 읽었다. '엄마 잃은 아이는/ 어떻게 살까/ 아빠 잃은 아이는/ 어떻게 살까/ 둘 다 잃은 아이는/ 어떻게 살까.' 그는 "그것이 궁금하다면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알려드리죠"라며 객석을 웃겼다.

박용재 시인은 "시단에선 '시인 박용재'는 잘 몰라도 '시인 박용하'는 잘 안다"며 동생을 치켜세운 뒤 "주변에선 형제가 다 시인이라서 큰일이라고 걱정하지만, 지금껏 별 탈 없이 잘 살아왔고, 동생은 전업 시인이니 나보다 시를 잘 쓰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박용하 시인은 "스무 살 이전까지 문학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오늘날 이 지경이 됐다"라며 "시인은 지금까지 없던 '첫 한 줄'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시 같지 않은 시'를 쓰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