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평(三視世評)] 고액 탈세자 잡는 월급쟁이, 영화 보듯 통쾌하네

유승민 의원 덕에 헌법 제1조2항이 히트했다면 드라마 '38사기동대' 덕에 헌법 제38조를 외게 생겼다. 모든 국민은 납세의 의무를 진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1조2항보다는 매력이 영 떨어지지만, 세금을 소재로 드라마 만들 생각을 하다니 대견하다.

OCN 금토드라마 '38사기동대'(밤 11시)란 해괴한 제목은 서울시청 '38기동대'라 불리는 세금징수과에서 착안했다. '사기' 수법까지 총동원해 세금을 징수한다는 의미를 더해 제목이 사기동대가 됐다.

'유리 지갑' 월급쟁이들이 고액 체납자를 향해 느끼는 보편적 분노를 자극하며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17일 첫 방송 시청률은 1.6%(닐슨코리아). "'시그널(tvN)' 이후 최고의 장르물"이란 찬사를 받으면서 마니아들을 끌어모으는 중이다.

세금징수국 만년 과장 백성일(마동석)과 사기꾼 양정도(서인국)가 손잡고 악성 체납자의 세금을 받아낸다는 설정. 조세정의라는 묵직한 주제를 내세워 '미생(tvN)'보다는 유쾌 발랄하게, '동네변호사 조들호(KBS)'보다는 다이내믹하게 극을 풀어간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박진감 넘치는 영상이 한눈팔 겨를 없이 이어진다. 착한 사람은 더욱 애처롭게, 나쁜 놈은 더욱 악랄하게 그렸고 조폭, 감방, 사기 행각에 자동차 추격 신까지 등장했다. 가슴을 파고드는 '어록'도 일찌감치 등장했다. "IMF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 마인드가 개조됐다. 돈이 종교고, 돈이 부모고, 돈이 친구란다." "사기를 왜 당할까 생각해봤다. 5000만 국민 욕망이 똑같아서다. 못 먹어도 돈, 무조건 돈."

최근 충무로 조연·악역을 섭렵해온 마동석이 양심을 지키려 애쓰면서도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애처로운 직장인을 연기한다. "목구멍에 밥이 넘어가냐"는 상사의 핀잔을 들으며 짜장면 그릇을 살포시 내려놓는 장면은 그의 곰 같은 몸집 덕에 더욱 와 닿는다. 최수현 기자는 "이종격투기 선수 트레이너 출신인 그에게 어째서 '마블리(마동석+러블리)'라는 별명이 붙었는지 이해가 됐다"고 했다.

영화 '오션스 일레븐' '도둑들'처럼 이 드라마도 백 과장이 사기꾼들과 팀을 꾸려 '악으로 악을 잡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얼마나 기발한 사기 행각을 보여주느냐가 관건. 양지호 기자는 "1·2회 중고차 매매나 택배 사기는 잡범 수준으로 시시했다"며 "좀 더 지능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쁜 놈한테는 나쁜 짓을 해도 되는 건가?'라는 윤리적 질문에도 그럴듯한 답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그 '나쁜 놈'은 왜 매번 '부자'인지도. 아침 드라마가 마르고 닳도록 불륜과 출생의 비밀을 이야기하듯 '부자=악(惡)'이라는 설정 역시 거의 모든 드라마·영화에서 반복되니 지겹고 무성의하다. 김윤덕 기자는 "성실하게 자기 일 하며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은 절대 출세할 수 없다는 절망감을 극단적 방식으로 각인시키는 듯해 우울하고 아쉽다"고 했다. 모처럼 나온 수작(秀作)이 자칫 분노를 권하는 드라마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