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料로 말하는 생활사… 민족주의 넘어서야"

"이야기로서의 역사, 사료(史料)가 말해주는 역사, 흥미롭고 재미있는 역사책을 쓰고 싶었다.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지 18년, 집필에 들어간 지 11년 만에 대장정을 마무리하니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목표가 어느 정도 달성된 것 같아 홀가분하다."

송기호(60)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가 우리 조상들의 삶이 녹아 있는 생활사를 담은 '송기호 교수의 우리역사읽기'(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총 7권·사진)를 완간했다. 최근 나온 시리즈 마지막 권인 제7권 '강 넘고 바다 건너'는 '국가 위상과 외교'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중국·일본·여진 등 이웃 나라·민족과의 대외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 시리즈는 2009년 제1권 '이 땅에 태어나서'(부제 한국인의 삶과 죽음), 제2권 '시집가고 장가가고'(가족과 의식주), 제3권 '말 타고 종 부리고'(신분세계와 유토피아)가 나왔고 이어 2014년 제4권 '농사짓고 장사하고'(생업과 행정), 제5권 '과거보고 벼슬하고'(관리의 길), 제6권 '임금되고 신하되고'(임금과 보필자들)가 출간됐다.

송기호 교수는 원래 한국고대사 전공이다. 대학원 시절부터 미개척 분야인 발해사 연구에 뛰어들어 '송발해'라는 별명을 얻었고, 저서 '발해를 찾아서' '발해정치사연구' '발해를 다시 본다'와 번역서 '발해의 역사' '러시아 연해주와 발해 역사' '발해고'를 냈다.

발해사 연구의 1인자로 꼽히는 송 교수가 한국사 전체를 관통하는 생활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고교 교육에서 무조건 외워야 하는 '암기 과목'이 돼버린 국사를 재미있게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미국·캐나다·영국에서 연구년을 보내면서 외국인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시켜야 했던 경험도 생활사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그는 1995년부터 대학원생들과 함께 생활사 슬라이드를 만들어 강의 교재로 사용한 데 이어 1998년부터 삼국사기·삼국유사·고려사·조선왕조실록 등 기본 사료와 관련 문헌을 통독(通讀)하면서 자료를 뽑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200자 원고지 2만매 분량의 자료가 모였고 '인간과 자연' '가족과 혼인' '사회와 신분' '국가와 제도' '외교와 이민족'으로 분류했다.

축적된 자료를 집필로 연결할 기회는 우연히 주어졌다. 대한토목학회지의 부탁으로 2005년 2월부터 매달 200자 원고지 60매 이상의 원고를 연재하게 된 것이다. 두 차례 단행본 간행은 연재물을 책으로 묶은 것이었다. 장기간의 집필로 건강이 나빠져 2014년 12월호로 연재를 끝낸 뒤 따로 쓴 8편의 원고를 추가하여 총 127편, 200자 원고지 8500매로 끝맺었다.

'송기호 교수의 우리역사읽기'는 다른 역사책들과 달리 역사가보다 사료의 목소리가 두드러진다. 주제를 정하면 관련 자료를 배열한 뒤 설명하는 방식이다. 제7권의 '왕과 황제' 항목은 발해 정효공주 묘지(墓誌),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같은 우리나라 자료와 함께 속일본기(續日本紀), 조선부(朝鮮賦) 등 인접국 자료가 등장한다. 송 교수는 자신의 역할을 자료를 연결하는 교량으로 설정한다. 그는 "이념에 휘둘리지 않은 역사책이 좋은 역사책이고 실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채로운 것은 국사학자인 저자가 민족주의적 관점을 벗어나자고 권유하는 점이다. 그는 이제 우열보다 차이, 발전이 아니라 변화, 대외 항쟁뿐 아니라 이웃들과의 상생 조화에 관심을 갖고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란이 될 만한 대목도 있다. 송 교수는 '간도가 우리 땅'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역사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1885년 조선과 청의 국경 회담에서 조선은 백두산 정계비에 양국 국경으로 표기된 토문강이 송화강이라고 주장했지만 조사 책임자였던 이중하가 토문강이 두만강임을 말해주는 흔적을 발견해 고종에게 보고서를 보냈고, 최근 조선족 학자의 조사에서도 이런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는 것이다. 송기호 교수는 "21세기에는 한국사를 고정된 하나의 틀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과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