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 쏟아진 셔츠… 쓱 닦아내면 '뽀송'

최근 의류업계의 화두는 '소비자 편의'다.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과 색상을 갖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평소 입고 관리하기 쉽고 손이 덜 가는 옷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옷이 겉으로 보이는 디자인에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같은 디자인과 색상의 의류라도 고객의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 각종 기능을 더하고 있다.

◇편하게 입고,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는 오염 방지 기술

삼성물산 패션부문 브랜드 '빈폴'은 3월 오염 방지 의류인 '나노 가공 상품'을 내놓았다. 평소 커피를 쏟거나 음식물을 떨어뜨려 셔츠나 바지가 더러워져 난감한 상황을 겪은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착안한 제품이다. 이 셔츠에 적용된 신기술은 '나노 가공 기술'이다.

특히 '나노 수염'을 이용한 기술이 핵심이다. 원리는 작은 솜털이 가득 나 있는 연잎이나 복숭아 표면에 물방울이 맺히는 것과 비슷하다. 금속산화물로 만든 10㎚(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크기의 나노 수염을 섬유에 심어 솜털의 역할을 하게 한다. 섬유에 머리카락 두께 5000분의 1 크기인 나노 수염이 촘촘히 박혀 있는 것이다.

섬유에 액체 등이 떨어졌을 때 오염이 되는 건 표면장력 때문이다. 표면장력은 액체가 자신의 표면을 최소화하려는 힘이다. 컵에 물을 가득 따랐을 때 액체가 넘치지 않고 컵 위로 둥글게 막을 형성하는 힘이 바로 표면장력이다. 표면장력은 액체뿐 아니라 고체와 기체 등에서도 접촉면(표면)이 있으면 생긴다. 침투하려는 액체의 표면장력이 섬유의 표면장력보다 강하면 액체는 섬유로 흡수되지 않는다.

나노 수염은 섬유가 갖고 있는 표면장력을 낮춰주는 역할을 한다. 나노 수염이 촘촘히 달려 있는 섬유의 표면장력은 20dynes/㎝이다. 'dynes/㎝'는 표면장력의 정도를 나타내는 단위로 다인(dyn)은 질량 1g의 물체에 작용해 1㎝/s²의 가속도가 생기게 하는 힘을 말한다. 우리가 평소 먹는 콜라의 표면장력은 72.9, 물은 72.8, 과일주스는 63.7, 간장 41.4, 해바라기유 33.5 등으로, 나노 수염의 표면장력보다 훨씬 크다. 나노 수염이 달린 섬유는 표면장력이 작기 때문에 외부의 물질을 튕겨낸다. 나노 수염이 코팅막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 제품은 비가 와서 바지가 젖어도 툭툭 털어내면 다시 보송보송해지고, 식사를 하다가 음식을 흘려도 닦아내면 된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3만5000장이 팔렸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섬유 위에 코팅을 한 게 아니라 섬유 자체의 미세한 나노 수염으로 방수 기능을 구현해 통풍도 잘된다"고 말했다.

◇다림질에서 해방시키는 상품도

빈폴은 오염 방지 기능이 있는 상품 외에 구김이 덜 가는 리넨 셔츠 제품인 '딜라이트 리넨' 셔츠도 내놓았다. 소비자들이 귀찮은 다림질을 덜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천연 섬유인 리넨은 의복용 섬유로서는 가장 오래됐으며, 1년생 식물인 '아마'의 줄기로 만든다. 광택이 있고, 통기가 잘 돼 여름용 의류 소재로 많이 쓰이지만 쉽게 구김이 가고 물에 약해 형태가 쉽게 틀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삼성물산은 천연소재인 리넨에 폴리에스테르를 섞어 이런 단점을 극복했다. 폴리에스테르를 너무 많이 섞으면 리넨 특유의 감촉과 통기성이 떨어지고, 너무 적게 섞으면 구김이 가거나 물빨래를 했을 때 뒤틀리는 현상이 개선되지 않았다. 18개월의 연구 끝에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리넨 63%, 폴리에스테르 37%라는 최적 비율을 찾아냈다.

김수정 빈폴 디자인실장은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고 소비자들이 집안일을 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예쁘고 편한 옷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일 입는 의류를 세탁하고, 관리하는 과정이 얼마나 편리한지도 의류를 선택할 때 고려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며 "고객 편의성을 위한 다양한 신기술을 의류에 적용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