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앨범? 13개월이면 나올지도…"

이병우(51)란 이름을 듣고도 갸우뚱하는 이들에게 '왕의 남자' '괴물' '해운대' '국제시장' 등 '1000만 영화'의 음악 감독이라고 얘기해주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영화에서 그의 음악은 연기를 했다가 풍경이 됐다가 갖은 재주를 부렸다. '마더'의 마지막 장면에서 석양을 등지고 김혜자가 춤을 출 때 흘러나오는 음악이 이병우의 것이 아니었다면 그 영화는 지금처럼 기억되지 못했을 것이다.

'기타리스트 이병우'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그를 오래 가로챈 영화계가 꽤나 원망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이병우가 최근 13년 만에 여섯 번째 독집 '우주기타'를 냈다. 그는 1984년 데뷔 이후 조동익과의 듀오 '어떤날'로 두 장의 앨범을 낸 뒤, 기타리스트로 5장의 독집을 발표했다. "기타리스트로 돌아오는 데 대체 왜 13년이나 걸린 것이냐"는 추궁에 "그동안 제가 음악을 안 들려 드린 것도 아니고…"라며 멋쩍게 웃었다. CD 속지에 실린 말대로, 13년은 한 아이가 태어나 중학교에 들어갈 만한 세월이다.

"영화음악을 하고, 그것을 앨범으로 내는 것도 저에게는 소중한 작업이었습니다. 기타 말고 다른 악기를 써보기도 했고, 영화감독들과 일하면서 배운 것도 많아요. 하지만 제가 음악을 맡은 영화를 극장에서 재밌게 본 적은 없어요. 하도 많이 보고 들어서 좀 질렸달까." 이병우는 26세에 첫 번째 독집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항해(航海)'를 냈다. 그는 "25년이 지난 지금 만든 앨범의 구성이 첫 솔로 앨범의 그것과 신기할 정도로 똑같다. 그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생각 없이 펼쳐 보였다면 지금 낸 앨범은 내가 좋아했던 것에 대한 해답을 내놓은 것 같은 기분이다. 음악적인 표현 방법, 연주 테크닉, 레코딩 기술 등을 정리하고 완성했다. 어찌 보면 기타로만 만든 앨범을 내놓겠단 꿈을 이루기까지 25년이 걸린 셈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 앨범을 더 일찍 낼 수도 있었지만 제가 궁금했던 것이 해결될 때까지, 원하던 소리를 얻을 때까지 기다렸어요. 어차피 이렇게 시간이 걸린 거, 1~2년을 더 해볼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이제 제가 갖고 있던 궁금증은 다 풀렸으니 다음 앨범까지 13년은 안 걸릴 거예요. 어쩌면 13개월 만에 나올지도 몰라요."

이병우는 "우주에서 보면 우리 모두 먼지 같은 존재"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이번 신보 제목도 '우주기타'다. '우주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두드림'이란 뜻이다. 그는 "이번 앨범에는 금속줄을 쓴 기타, 나일론줄을 쓴 기타, 일렉 기타 등등을 썼다. 마치 금관·목관악기가 한데 어우러진 오케스트라 같다. 그게 하나의 우주란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이병우에겐 이명(耳鳴)도 있고, 귀가 별로 안 좋단다. 그는 "그래선지 귀에 들려오는 소리가 우주의 소리 같기도 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