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 시달린 하루, 웹툰이 토닥여주네

#현관문 틈으로 할머니 품에 안겨 발버둥치는 아이가 보인다. 문밖에 선 아빠가 아이를 돌아보며 손을 흔든다. 아빠의 발은 회사를, 얼굴과 몸은 아이를 향하고 있다. 그림 옆으로 문장 한 줄이 흐른다. '멈칫멈칫 그리고 또 멈칫, 출근.'(심재원 작가 '그림에다' 중)

#부스스한 머리의 엄마가 지친 표정으로 아이를 업고 있다. 등에 업힌 아이는 침을 질질 흘리면서 겨우 잠든다. 다음 장면에선 자려고 누운 아이가 엄마 냄새를 맡겠다며 품으로 파고든다. 반쯤 눈을 감은 엄마는 "엄마도 좀 자자…"라고 중얼거린다. 그림 옆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네가 자라는 속도는 너무 빨라서 소중한 순간도 너무 빨리 지나가. 사랑스러운 버릇도, 짓궂은 장난도 엄마가 열심히 기억해줄게.'(김진형 작가 '딸바보가 그렸어' 중)

아이를 키우는 잔잔한 일상을 그림으로 담아내는 인터넷 만화가 '육아툰(육아+웹툰)'이라 불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 육아는 대중문화의 주요 소재이지만, 그중에서도 웹툰은 요즘 엄마들이 가장 열렬히 공감하는 장르다. 구질구질한 일상도 위트를 섞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누구나 겪는 소소한 순간을 결정적 장면으로 포착해낸다.

엄마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는 이런 글이 자주 올라온다. "간신히 애 재워놓고 오늘도 육아툰 보고 킥킥대며 하루 마무리했네요." "만화이지만 위로도 받고 마음도 다잡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육아 소재 예능·드라마의 경우 화려한 연예인이 등장하고 특별한 이벤트에 치중해 종종 박탈감을 안기는 반면, 웹툰은 '완전 내 얘기'라는 공감, '나만 서툴고 고된 게 아니구나'라는 위로를 얻게 한다.

네이버 웹툰 관계자는 "일상 에피소드를 만화로 그리는 '생활툰' 콘텐츠가 다양화되면서 한 갈래로 '육아툰'이 본격 등장했다"고 말했다. 전문 작가의 작품 중에는 싱글맘의 육아를 다룬 '일상날개짓'(작가 나유진), 두 아들의 엄마가 그리는 '나는 엄마다'(순두부), 좌충우돌 3남1녀의 일상을 담은 '패밀리 사이즈'(남지은·김인호) 등이 몇 년간 꾸준히 인기를 끌었다.

최근엔 평범한 엄마·아빠들이 SNS에 육아 경험담을 그림으로 연재해 스타가 되기도 한다. 회사원 김진형씨는 딸이 네 살이던 2014년부터 '딸바보가 그렸어'라는 육아툰을 그려왔다. 페이스북·카카오스토리 등 온라인 구독자 50만명, 주 1회 새 그림을 올릴 때마다 조회 수가 총 300만 건에 이른다. 맞벌이 부부의 애환, 아이를 돌보며 느끼는 아쉬움과 갈등까지 섬세하게 담아내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아빠 이야기만 다룬 1권에 이어, 엄마가 글을 쓰고 아빠가 그린 두 번째 책이 이달 출간됐다.

회사원 심재원씨도 바쁜 맞벌이 부부가 외아들 키우는 이야기를 '그림에다'라는 제목의 한 컷 그림으로 연재하고 있다. 2년간 블로그 누적 방문자 31만명, SNS 전체 구독자 40만명을 기록 중이다. 보는 이마다 자기 가족 얼굴을 대입할 수 있도록 그림 속 부모·아이의 눈·코·입은 비워 두었다. 심씨는 "육아휴직을 하면서 도움받을 만한 책을 찾아보니 육아법에 대한 것뿐이었다"며 "공감과 위로가 될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봤는데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부모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고 했다.

육아툰의 또 다른 특징은 아이보다는 부모의 성장·성숙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 '집으로 출근'이란 육아툰을 연재 중인 회사원 전희성씨는 "철저히 내 입장에서 겪고 바라보는 육아를 그려 신선하다는 반응이 많다"고 했다. 콘텐츠는 계속 진화한다. 김진형씨는 전문가와 협업을 통해 훈육에 관한 실용 정보를 전달하는 웹툰을 구상 중이다. 심재원씨는 올여름 가족과 함께 핀란드에 머물며 '북유럽 육아'를 구체적으로 그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