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국 國旗 꽃밭'에 감사의 마음이 피었습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꽃밭이지만, 북한 치하에서 살 뻔했던 우리 동네 주민들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게 해준 유엔(UN) 참전국들에 대한 작은 보답입니다."

지난 22일 휴전선에서 남쪽으로 4㎞ 떨어진 경기 연천군 백학면 전동리에 있는 농원(農園) '망재원'. 푸른 논밭 사이에 자리 잡은 이 농원에 형형색색의 꽃들로 만들어진 18개 직사각형 모양의 꽃밭이 만들어졌다. 붉은 패랭이꽃밭 가운데 흰 조약돌로 초승달과 별 무늬를 만든 꽃밭은 터키 국기를, 가운데에 빨간 단풍잎 모양을 만든 꽃밭은 캐나다 국기를 본뜬 것이다.

그 옆으로 미국·영국·프랑스·에티오피아 등의 국기 모양 꽃밭이 이어졌다. 6·25전쟁 때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군대를 파병한 유엔 동맹국 16개국의 국기를 형상화한 정원(庭園)이다. 나머지 2개 꽃밭은 태극기와 의료 지원단을 보냈다가 전사자를 낸 덴마크 국기 모양으로 조성됐다. '6·25 한국전쟁 유엔 참전국 국기 꽃밭'이란 이름을 붙인 1000㎡(약 300평) 크기의 이 작은 정원은 6·26전쟁 66주년을 기념해 24일부터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장한다.

이 정원은 전동리 주민 30여 명으로 이뤄진 '백전애모회(백학면 전동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만들었다. 유엔군에 대한 특별한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다. 38선 북쪽에 있는 전동리는 6·25전쟁 전까지 북한 땅이었지만, 치열한 교전 끝에 1953년 정전 협정 체결과 함께 남한 땅이 됐다. 망재원 땅을 정원 부지로 내놓은 김만규(77) 인하대 명예교수는 "유엔군이 생면부지의 한국인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덕에 전동리 주민들이 북한 정권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있었다"면서 "전쟁이 터진 지 60년이 훌쩍 지났지만, 참전국에 대한 보은(報恩)을 위해 정원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꽃밭 앞에 설치된 팻말에는 각국의 파병 인력과 피해 상황이 적혀 있다. 미국은 178만9000명이 참전해 3만6940명이 전사하고 9만여 명이 부상당했다. 영국·터키·캐나다·호주·프랑스·그리스·콜롬비아 출신 장병들도 수천 명씩 희생됐다.

백전애모회 회원들은 최연소 회원이 55세, 최고령 회원이 82세다. 모두 전동리에서 태어났거나 전동리 출신 부모를 둔 사람들로 6·25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이날 굽은 허리로 꽃밭의 잡초를 뜯던 최승률(78)씨는 당시 인민학교(한국의 초등학교)를 다니다 전쟁 직전 가족과 함께 평안남도의 어느 탄광촌으로 강제 수용됐다. 최씨는 "마을에 소개령이 떨어져 탄광촌으로 이주한 후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면서 "전쟁이 터진 후 혼란한 틈을 타 8일을 걸어 간신히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마을의 자유를 위해 전사한 외국 장병들의 넋을 꽃으로 살려낸다는 마음으로 정원을 만들었다"면서 "꽃 종류가 많지 않고 엉성하지만 노인네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만든 정성을 좋게 봐주면 좋겠다"고 했다.

전동리는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민통선과 맞닿아 있다. 주민 이기선(62)씨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자고 일어나면 북한이 뿌린 삐라가 논밭을 하얗게 덮는 일이 잦았다"고 했다. 6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이따금씩 북한의 대남 방송이 들려온다. 북한에 가족이나 친척을 두고 평생 이산(離散)의 한(恨)을 간직해온 주민들도 많다. 지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북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래서 북한 정권을 미워하는 만큼이나 통일에 대한 염원도 절실하다고 했다. 현재 민통선 안에서 허가를 받고 농사를 짓고 있는 서두석(61) 백전애모회 공동대표는 "민통선 안에서 보면 북한은 뛰어가면 닿을 듯한 땅"이라며 "그동안 전쟁을 일으킨 북한에 대한 원망도 많았지만 이제는 통일이 이뤄져 주민들과 우리 민족의 상처가 치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