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농락 스쿨 폴리스' 경찰청도 알고선 모른 척

28일 오전 9시 30분 부산 연제경찰서 스피커로 "서장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해달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이곳 소속이던 정모(33) 경장이 상담 대상인 여고생(17)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을 은폐했다는 책임을 지고 대기발령을 받은 김성식 서장(총경)이 퇴임하는 날이었다. 김 서장이 경찰서를 나설 때 직원 40여명이 계단에 도열해 떠나는 김 서장을 향해 박수를 쳤다.

같은 시각 이상식 부산경찰청장은 부산지방경찰청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학교 전담 경찰관이 보호해야 할 여고생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시민에게 심려를 끼쳐 정말 송구하다"면서 "자녀를 둔 부모가 경찰에 대해 얼마나 큰 실망감과 분노를 느낄까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하지만 이 청장은 사과 장면에 대한 촬영을 거부했다. 그는 "언론사 카메라 앞에서 제복을 입은 경찰이 공식 사과하는 것은 사퇴를 염두에 뒀다고 봐야 하는데, 지금 (경찰관과 여고생의 성관계 문제는) 그 정도 사안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이번 사건을 경찰이 은폐했다는 정황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부산지방경찰청은 연제경찰서 소속 정 경장이 사고를 친 사실을 아동보호 전문기관이 알렸는데도 '연제경찰서에 신고하라'고만 하고 구체적인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 여고생을 상담한 아동보호 전문기관과 경찰에 따르면, 부산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계 소속 경위(31)가 지난달 9일 아동보호 기관으로부터 두 사람 간의 성관계 사실을 최초로 들었다. 아동보호 기관 관계자는 해당 경위에게 사건 내용을 설명하면서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위는 위에 보고는 하지 않고 "연제경찰서 청문감사관실로 신고하라"고 했다. 해당 경위는 "성폭력이 아니라 성관계라고 들었고, 경찰관의 품위 유지와 관련한 문제라고 생각해 연제경찰서 청문감사실에 신고하라고 넘겼다"고 해명했다.

연제경찰서는 아동보호 기관의 신고를 받고서도 쉬쉬하며 은폐한 채 정씨의 사표를 받아 수리하는 선에서 이번 사건을 끝내려 했다.

경찰청도 이번 사건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비밀에 부친 게 아니냐 의혹도 불거졌다. 경찰청은 이달 초 '부산의 스쿨 폴리스가 상담 대상 여고생과 성관계를 했다'는 정보를 입수, 부산지방경찰청에 사실인지 물었다고 한다.

이에 부산지방경찰청은 '그런 사실이 있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경찰청은 24일 장신중 전 강릉경찰서장이 이번 사건을 SNS에 폭로하기 전까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경찰청은 이에 대해 "여고생들이 (경찰) 조사에 응하지 않아 사실인지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그동안 "장 전 서장의 폭로로 이 사건이 보도되기 전까지 전혀 몰랐다"고 했었다.

한편 부산지방경찰청은 이날 사하경찰서 출신 김모(31) 전 경장을 불러 조사했다고 밝혔다. 김 전 경장은 이 사건이 외부로 처음 공개된 24일 이후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가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김 전 경장은 개인 휴대전화를 없애고 다른 휴대전화를 개통해 사용하고 있었다고 경찰은 말했다. 연제경찰서 정 전 경장은 이틀째 조사를 받았다. 정 전 경장은 자신과 성관계를 가진 여고생이 지난달 7일 자해를 시도해 병원에 입원하자 찾아가 만난 것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