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수백㎞ 자기부상열차… 우리집 세탁기에도 있네

강력한 회전력으로 빨래통을 돌리는 세탁기, 선로 위를 시속 수백㎞로 달리는 자기부상열차, 로켓 대신 승객과 짐을 우주까지 실어나르는 초고속 엘리베이터….

얼핏 봐서는 서로 아무 관련이 없어보이는 기술들이다. 하지만 이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기장과 전기를 이용해 강력한 추진력을 얻는 '리니어(linear·선형) 모터'의 원리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리니어 모터는 원통형 일반 모터와는 전혀 다르게 생겼다. 서로 마주 보는 두 평평한 판이 마치 서로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구조다. 언뜻 봐서는 '모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자기부상열차에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해 앞으로 비행기보다 두 배 빠른 하이퍼루프(초고속열차)와 우주 엘리베이터에도 적용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 기술이 집 안 세탁기에도 들어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통형 모터를 평면으로 만든 리니어 모터

모터는 자석 간의 반발력(밀어내는 힘)과 인력(끌어당기는 힘)을 이용한다. 원통형 모터에는 영구자석과 전자석이 들어 있다. 몸통에 붙어 있는 영구자석은 N극과 S극 등 극(極)이 바뀌지 않는 자석이다. 회전하는 축에 달려 있는 전선 뭉치가 전자석이다. 이 전자석은 전류의 흐름에 따라 N극과 S극이 계속 바뀐다. 모터가 회전하면서 몸통의 영구자석과 축의 전자석들은 서로 잡아당기고 밀어내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을 통해 축이 빠르게 회전한다.

리니어 모터는 기존 모터의 축을 없앴다. 축이 없으면 회전하는 대신 한쪽으로 전자석이 미끄러지게 된다. LG전자 H&A(생활가전) 사업본부 모터연구실 이호재 수석연구원은 "전자석을 원통에 가둬놓지 않고, 한쪽 방향으로 길게 영구자석이 깔려 있는 '자석의 길'에 올려 놓는다는 발상의 전환을 한 것이 리니어 모터"라고 했다.

리니어 모터의 원리를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자기부상열차다. 자기부상열차에는 바퀴도, 바퀴를 움직이는 모터도 없다. 대신 철로에 영구자석이 쭉 깔려있고, 열차 바닥에 바퀴 대신 수백개 전자석이 깔려있다. 자기부상열차가 움직이려면 바닥의 전자석에 전기를 흘리면 된다. 그럼 열차의 전자석과 선로의 영구자석이 서로 밀어내고 당기면서 열차가 앞으로 움직인다. 선로와 열차 바닥이 하나의 거대한 '리니어 모터'를 이루는 것이다. 열차 바닥의 전자석이 N극과 S극을 바꾸는 속도를 높여가면 자기부상열차의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이런 자기부상열차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바로 하이퍼루프다. 하이퍼루프는 거의 진공 상태인 터널을 달리는 자기부상열차를 뜻한다. 진공상태다 보니 공기 저항이 거의 없어 음속 이상 속도를 낼 수 있다.

여기에 수직으로 궤도만 올릴 수 있다면 우주로 가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도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케이블이 불필요하고 궤도 안에 자기장만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면 계속 수직으로 상승시킬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세탁기에 들어간 자기부상열차

세탁기에는 이런 리니어 모터가 둥그런 형태로 적용되어 있다. LG전자 세탁기에 탑재되는 '다이렉트 드라이브(DD) 인버터 모터'를 보면 마치 롤케이크처럼 생겼다. 자기부상열차를 둥글게 말아 머리과 꼬리를 붙인 식이다. LG전자 측은 "세탁기는 열차나 엘리베이터와 달리 회전 운동을 하기 때문에 형태를 변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기본 원리는 같다.

LG전자는 이 모터의 힘을 더욱 효율적으로 끌어내기 위해 모터와 세탁조(드럼)를 하나로 붙였다. 기존 세탁기는 모터와 세탁조가 따로 떨어져있고, 둘을 벨트로 연결했다. DD인버터 모터는 세탁조와 모터가 서로 붙어 있고 별도로 힘을 전달할 벨트가 필요가 없기 때문에 소비 전력과 소음이 모두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