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매니저가 엄선한 종목 죽쑤고… 시장흐름 따른 ETF '휘파람'

회사원 이모(34)씨의 소소한 즐거움은 ETF(상장지수펀드)를 매일 샀다 팔았다 반복하는 것이다. 그는 국내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을 추려 만든 주가지수인 '코스피200'의 움직임에 따라 수익률이 변하는 ETF에 투자하고 있다. 주가가 1900선 가까이 빠졌다 싶으면 상품을 사고, 2000선 언저리까지 올랐다 싶으면 파는 것이 쏠쏠한 용돈 벌이 재테크가 된다. 이씨는 "펀드도 해봤고 주변에서 찍어주는 종목 투자도 해봤지만, 펀드는 수수료 대비 수익률이 시원찮았고 종목 투자는 너무 위험했다"면서 "주가지수의 큰 방향만 점치면 되는 지수형 ETF가 차라리 마음 편하다"고 말했다.

이씨가 투자하는 지수형 ETF나 인덱스 펀드 같은 '패시브(펀드매니저의 개입을 줄이고 시장 흐름을 따라가는 전략)' 투자가 재테크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씨의 선택은 옳았다. 국내에 출시된 대부분의 액티브(펀드매니저가 적극적으로 종목을 골라 펀드를 운용하는 전략) 펀드가 갈수록 수수료 값도 못하는 성적을 내고 있는 데 비해, 패시브 펀드는 최소한 주가지수와 비슷한 수준의 수익을 내며 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 투자자가 '패시브가 액티브보다 낫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7월 현재 국내 주식형펀드 순자산(평가 규모) 중 패시브 방식으로 운용되는 상품 규모가 37%인 19조1000억원에 육박한다.

◇펀드매니저의 굴욕, 패시브 펀드의 완승

펀드평가사 제로인과 함께 올해 상반기 국내 펀드시장 성적표를 뽑아봤더니, 일반 주식형 펀드 1456개의 평균 수익률이 -2.3%에 그쳤다. 인기를 끌었던 중소형 주식형 펀드 251개의 평균 수익률은 -4.6%로 더 저조했다. 이 기간 코스피 지수가 1.3% 올랐고, 코스피200 지수는 2.6% 오르며 비교적 선전했지만, 펀드매니저들이 그들 나름의 안목으로 종목을 엄선해 담았다는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은 이에 훨씬 못 미쳤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펀드매니저들이 '시장'에 졌다"고 표현하고 있다.

 

반면 코스피200의 흐름을 따라가는 패시브형 인덱스 펀드 267종의 평균 수익률은 2.5%로 지수 상승분과 거의 비슷했다. 대부분의 인덱스 펀드가 투자 기준으로 삼는 지수의 구성 종목들을 펀드에 따라 담는 점을 감안할 때 당연한 결과다.

수익률 상위 펀드 역시 패시브 방식으로 투자한 상품이 휩쓸었다. '미래에셋TIGER200헬스케어ETF'(수익률 12.75%) '미래에셋TIGER200중공업ETF'(12.06%) '한화ARIRANG고배당주ETF'(7.46%) '키움KOSEF고배당ETF'(6.61%) 등 '수익률 상위 10위' 안에 패시브 펀드가 7개나 자리를 차지했다. 수익률 1위를 기록한 미래에셋TIGER200헬스케어ETF는 한국거래소의 '코스피200 헬스케어' 지수에 담긴 종목 95%를 따라 담은 것으로, 난다 긴다 하는 바이오 전문 펀드매니저들이 종목을 찍어 담은 펀드보다 수익률이 훨씬 좋았다. 수익률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고배당주ETF 역시 펀드 규모가 3조원대로 국내에서 가장 큰 액티브 펀드인 신영자산운용의 신영밸류고배당펀드의 상반기 수익률(0.7%)을 압도했다.

◇'싸서·빨라서·투명해서' 인기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올해는 새해 첫 거래일부터 중국발 폭락이 시작됐고, 유가가 급락했다 급반등했으며, 미국 금리 인상 계획은 예상과 달리 빗나갔다. 지난달엔 누구도 예견 못 한 브렉시트까지 발생했다. 펀드매니저들이 시장의 출렁임에 기민하게 대응하기에 역부족일 만큼 변동성이 컸다는 게 첫째 원인으로 꼽힌다. 실력 좋은 투자꾼이 몰려 있는 해외 헤지펀드 상품들의 수익률 역시 대부분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것도 같은 이유라는 것이다. 패시브 상품들은 최소한 주가지수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투자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나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구조적인 이유도 있다. 일반 주식형 펀드에 가입하면 거래비용(수수료+운용보수)으로 투자 원금의 평균 1.7~2.3%를 떼이는 데 비해, 패시브 펀드의 대표 주자인 ETF는 판매수수료가 없어 총거래 비용이 평균 0.3% 수준으로 일반 펀드의 6분의 1밖에 안 된다. 비용까지 감안한 최종 수익률에서 패시브 펀드가 1%포인트 이상 이기고 들어가는 것이다. 또, 지수의 성과가 곧 내 펀드의 투자 성과로 연결된다는 점, 펀드매니저의 실수나 개별 종목의 위험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영향을 작게 받는다는 점, 원하는 수량만큼 원하는 시점에 신속하게 매매할 수 있다는 점. 펀드 구성 종목의 비중과 보유 수량 등 포트폴리오 내역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2010년 액티브 펀드 62조원, ETF 등 패시브 펀드 8조3000억원 수준으로 액티브 위주였던 펀드 시장이 현재는 액티브 펀드가 33조원으로 반 토막 나고 패시브 펀드는 19조1000억원으로 두 배 이상으로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