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판 길바닥 광고… 행인 마음도 '덕지덕지'

지난 13일 오후 8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서울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역 근처 유흥가. 미로처럼 얽힌 골목 곳곳에 약 10m 길이의 빨간색 깔판(레드 카펫)을 길바닥에 깔아놓은 술집 10여곳이 장사를 벌이고 있었다. 술집들이 지나가는 손님의 눈길을 끌기 위해 강력 접착제로 깔판을 바닥에 붙여놓은 것이다. 오래된 깔판들은 끝부분이 둘둘 말려있거나 바닥과 떨어진채 붕 떠있었다. 깔판에 걸려 넘어지는 보행자도 있었다. 깔판 옆 바닥에는 '이쪽으로 2m만 오면 된장찌개가 공짜!'라는 광고물 여러 장이 청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이 동네 주민 장모(55)씨는 "음식점들이 입간판으로 통행에 불편을 주는 것도 모자라 이젠 길바닥까지 가게 홍보물을 붙여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면서 "음식점 주인들에게 여러 차례 항의했지만 '다들 그러는데 왜 나만 갖고 그러냐'고 오히려 화를 내서 기가 막혔다"고 했다.

외국 관광객을 비롯해 많은 시민이 찾는 서울의 명소 바닥이 불법 홍보물로 몸살을 앓고 있다. 14일 오전 서울 강남역 이면도로 바닥에는 찢긴 청테이프 자국이 누더기처럼 널려 있었다. 서초구청과 강남구청 소속 단속반과 환경미화원들이 바닥에 붙여진 홍보물을 제거하고 남은 청테이프들이다. 길바닥에는 구겨진 전단들이 뒹굴고 있었다. 홍대입구역과 신촌역 주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신촌역 주변 오피스텔에 사는 박모(여·29)씨는 "찢긴 청테이프에 담뱃재까지 달라붙어서 이상한 냄새도 진동한다"면서 "신발에 청테이프에서 나온 끈끈이 같은 게 묻어서 찝찝하다"고 했다. 이날 신촌을 찾은 미국인 관광객 비키(35)씨 일행은 "큰 도로는 깨끗한데 골목길은 바닥에 버려진 전단과 찢긴 포스터가 덕지덕지 널려 있어 보기 흉하다"고 했다.

홍대입구역과 마포역 주변을 관리하는 마포구청 도시계획과에는 거리 바닥에 붙여진 홍보물을 없애 달라는 민원이 하루 10건 이상 접수되고 있다. 마포역 인근 아파트에 사는 정유미(여·40)씨는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등굣길에 반라(半裸) 여성 사진을 앞세운 유흥업소 전단이 붙어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구청은 이런 불법 홍보물 단속도 하지 않고 뭘 하는 것이냐"고 말했다.

인근 상가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건대입구역 부근에서 옷 장사를 하는 우모(여·30)씨는 "거리가 깨끗해야 손님들도 많이 찾아올 텐데 매일 저녁마다 불법 전단이 가게 앞을 도배하다시피 나뒹굴고 있다"고 했다. 아르바이트생들을 고용해 게릴라식으로 길거리를 다니면서 수백장의 전단을 한꺼번에 뿌리는 업소들도 있다.

시민들의 불만이 쏟아지자 관할 구청들은 불법 광고가 많이 붙는 구간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구청별로 단속 인원이 4~6명뿐인 데다 업소들이 단속반원과 숨바꼭질하듯 단속을 피해 불법 전단을 뿌려대기 때문에 단속이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밤 10시 이후에 구청 단속이 뜸하다는 걸 노린 업소들이 집중적으로 야간에 불법 전단을 부착하고 있기 때문에 단속이 매우 힘들다"고 했다. 강남역 부근 유흥가 골목을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김모(34)씨는 "쓰레기를 치우다 보면 거리 바닥에 붙어 있던 전단 양이 전체의 절반 정도 된다"고 말한다.

불법 광고물 무단 부착으로 단속된 건수는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다. 강남구청이 적발한 불법 전단 수는 2014년 23만여장에서 2015년 45만3000여장으로 거의 배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