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陳검사장, 범죄자 잡으라고 준 칼로 강도질 한 셈"

진경준(49) 검사장이 17일 현직 검사장으로는 처음으로 비리 혐의로 구속됐다. 이 일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이날 청와대에 사의(辭意)를 표명했다. 검찰 조직 전체가 일대 혼돈 속으로 빠져든 양상이다.

김 장관이 사의를 밝힌 것은 진 검사장 사태에 대한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한 데 따른 책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지난 3월 25일 공직자 재산공개를 통해 진 검사장이 넥슨 비(非)상장 주식을 특혜 매입했으며, 주식을 팔아 126억원 대박을 터뜨렸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개인의 주식거래일 뿐"이라며 수수방관했다.

법무부 고위 간부들은 "주식 투자로 번 돈을 문제 삼는 것은 지나치며, 감찰이나 수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거나 "진 검사장 관련 보도가 여론 재판으로 흐르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법무부가 진 검사장 감찰조사에 난색을 표명하면서 진 검사장의 재산 형성 과정 등에 대한 조사는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로 넘어갔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지난해 '김현웅 법무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준비단장을 당시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이던 진 검사장이 맡은 인연 때문에 김 장관이 소극적 태도를 취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돌았다. 대한변협 고위 관계자는 "진 검사장이 저지른 비리와 별개로 법무부와 검찰,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그를 감싸려 하거나 방치하다가 사태를 더 키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일요일인 17일 검찰 내부는 온종일 진 검사장 문제로 들끓었다. 서울중앙지법이 진 검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지 15분 뒤인 이날 새벽 0시 36분쯤 법무부 대변인이 '장관이 사과문을 발표했다'고 출입기자들에게 알렸다.

기자들에게 단체로 발송된 이메일에는 A4용지 1장으로 된 사과문이 들어 있었다. 김 장관은 사과문에서 "누구보다 청렴해야 할 고위직 검사가 상상할 수 없는 부정부패를 저지른 점에 대해 부끄럽고 참담하다"며 "특임검사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상응한 책임을 묻겠다"고 썼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고위 간부는 "이 문제가 구두(口頭) 사과로 끝날 사안인가. 영장 발부가 한밤중이어서 여건이 안 된다면 17일 오전이든 오후든 공개석상에서 사죄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의 한 검찰 간부도 "사상 초유의 검사장 구속 사태에다 법무부와 검찰이 그동안 미온적 대응을 한 것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고 했다.

일선 검사들 사이에선 침통함과 함께 분노의 목소리가 나왔다. 대검의 한 간부는 "범죄자 잡으라고 칼을 쥐여줬더니, 진 검사장이 이 칼로 강도질을 한 셈"이라고 했다. 지방의 한 검사장은 "검사장이라는 직책이 기업을 등쳐, 뒷돈이나 챙기는 시정잡배 자리로 전락했다"며 "참담하다"고 했다. 서울시내 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대한민국 검사는 다 저 모양이냐'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된 상황"이라고 했다.

검찰의 비리와 추문(醜聞)은 각 정권 때마다 반복돼 왔다. 김대중 정권 때는 김태정 법무 장관과 신승남 검찰총장이 옷로비 의혹 사건과 이용호 게이트 사건에 연루돼 검찰과 특검 수사를 받았다.

이명박 정권 때는 현직 부장검사가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고, 이 문제와 관련해 한상대 전 검찰총장이 최재경 전 대검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하자 검사들이 집단 반발하는 일이 있었다.

이 정권 들어서는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 문제가 불거졌다. 법조계에선 "검찰의 권한을 제한하는 근본적인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