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 '블루오션'… 이탈리아 소설이 몰려온다

스파게티·피자에 이어 이탈리아산(産) 소설이 몰려오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 등을 제외하면 국내 인지도가 큰 작가가 드물었고, 프랑스·독일·영국 등 서유럽에 밀려 변방으로 취급받기 일쑤였던 이탈리아 소설의 기세가 무섭다.

인터넷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2010~2013년 10권 정도에 머물던 출간 종수가 2014년 36권으로 뛰었고, 올해 7월 현재 25권으로 집계됐다. 2014년부터 이탈로 칼비노 전집을 발간한 민음사 측은 "새로운 문학 시장 개척을 위해 '항해'하다가 이탈리아라는 '신대륙'을 발견한 셈"이라고 말했다. 출판사들이 꼽는 이탈리아 소설의 인기 요인은 한국과의 정서적 유사성이 많다는 점이다. 칼비노 전집 대표 번역가로 참여한 번역가 이현경씨는 "이탈리아 소설엔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정(情)에 약하고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그곳 사람들의 정서가 녹아 있다"면서 "프랑스 소설 등에 비해 덜 현학적이고 일상의 모습을 그려내는 작품이 많아 '진입 장벽'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이탈리아 현대소설의 대부 조르조 바사니, 풍자 작가 조반니노 과레스키,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 안토니오 타부키 같은 거장(巨匠)들이 초반 이탈리아 소설 붐을 이끌었다. 최근에는 그 바통을 신진 스타가 이어받고 있다. 가장 뜨거운 이탈리아 소설가로 평가받지만, 본명을 밝히지 않고 필명으로만 활동하는 엘레나 페란테의 '나의 눈부신 친구'가 최근 출간됐다. 1950년대 나폴리의 가난한 동네에서 빚어진 우정을 그린 이 4부작 소설은 해외 작가·배우들의 열렬한 반응을 낳으며 '페란테 열병(Ferrante Fever)'이라는 신조어까지 생산했을 정도. 번역자 김지우씨는 "당시 나폴리의 소박하고 편안한 분위기, 여성의 복잡한 감정을 다루면서도 읽기 쉬운 문체가 소설의 몰입도를 높인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소설의 약진에는 주한이탈리아문화원의 의지도 한몫했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서울국제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참여한 데 이어, 올해에는 '스포트라이트 컨트리(Spotlight Country)'로 선정됐다. '율리시스 무어'를 쓴 피에르도메니코 바칼라리오 등 문인 4명을 도서전에 초청했고 문학 세미나도 열었다. 이 같은 노력으로 매년 이탈리아 외무부가 선정·지원하는 번역지원금을 신청한 국내 출판사도 예년 3곳에서 올해 9곳으로 증가했다.

이탈리아 소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역자의 숫자가 번역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국내 이탈리아 소설 전문 번역가는 15명 안팎. 이탈리아대사관에 근무하면서 '나의 눈부신 친구'로 첫 소설 번역에 나선 김지우씨를 제외하면 대부분 대학 강단 출신이다. 이현경씨 같은 인기 번역자는 올해만 7권을 번역했을 정도다. 출판사 관계자들은 "알음알음 소개로 역자를 찾는데 이마저도 작업 일정이 겹치면 일손 찾기가 더 힘들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