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고 외로울 땐 몸에 힘 빼고 '후후후'

후후후의 숲

조경란 지음ㅣ스윙밴드ㅣ199쪽ㅣ1만3000원

2008년 동인문학상 수상 작가 조경란(47)의 엽편(葉篇)소설집이다. 콩트 31편이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웅숭깊게 작은 행복의 순간을 그려낸다. 주로 답답한 삶에 숨통을 틔우는 이야기 모음이다. 수록작 중 '후후후의 숲'은 번번이 취업 문턱에서 눈물을 삼키는 청년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청년은 공원에서 숨을 삼켰다가 후후후 내뱉는다. '두려울 때 슬플 때 겁이 날 때 긴장될 때 그리고 외롭다고 느낄 때. 몸에 힘을 빼고 후후후'라며.

콩트 '두루미와 나의 진짜 이야기'는 이솝 우화의 패러디다. 여우와 두루미가 서로 골탕을 먹이는 게 아니라, 애틋하면서도 살가운 우정을 나눈다는 것. 두루미는 일찍 자식들을 출가시킨 뒤 혼자 살지만, 여우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다 늙어간다. 여우는 두루미 덕분에 살맛이 난다고 한다. '우리는 다른 데가 많지만 변함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의 그늘진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 대개는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난 후의 시시콜콜한 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 이야기의 절반은 침묵'이라고 한다. 진솔한 대화는 격의 없는 수다가 아니라 적당한 묵언(默言)의 교환으로도 이뤄진다. 이야기를 꽉 채우기보다는 의미의 여백을 놔두는 것이 조경란 소설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걷고 싶은 날이나 몸의 선을 드러내고 싶은 날'에만 하이힐을 신는 여자, '맥주의 여왕'이라고 할 정도로 맥주만 마시는 여자, 도넛을 구운 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여자. 작가의 분신으로 보이는 그 여자들이 제각각 빚어내는 작은 이야기들이 송이송이 영글어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