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의 비밀책장] 숱한 밤 지새울 겁니다, 슈이치의 세계 좇다 보면

이 '세계'에서 '어떤' 사건이 '왜' 일어나는가. 작가는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세계'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제시한다. 우리는 그것을 소설이라 부른다. 로버트 맥키('story')는 이와 관련한 작가의 태도에 대해 아래와 같은 말을 남긴 바 있다.

"인간 안으로 깊이 파고들어가 새롭고 내밀한 시각을 발견해내고,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정련해 낸 다음, 세계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표현해 내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쓰인 이야기는 흔치 않다. 사건만 좇으면 인간이 희미해지고, 의미에 치우치면 재미가 사라진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은 이야기는 독자에게 행운이자 고문이 된다. 밥 먹는 것도, 화장실에 가는 것도 귀찮다. 내일 아침 출근을 해야 하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이야기의 여운과 자기 안의 되울림에 붙들려 끙끙 앓는다. 요시다 슈이치는 내게 이런 밤을 세 번씩 안겨준 작가다.

10여 년 전, '7월 24일 거리'라는 소설로 그를 처음 만났다. 아직도 그때의 황홀한 느낌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 가슴에 책을 올려놓은 채 눈만 껌벅거리던 새벽도. 이토록 서정적인 문장과 이야기가 아직도 가능하구나…. 몇 년 후, '악인'으로 두 번째, 다시 몇 년 후 '분노'로 세 번째 밤을 안겨줬다. 작가로서 절정에 이른 느낌이었다.

 

"행복해질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믿고 싶습니다."

하치오지 교외에서 발생한 부부 살인사건을 스케치하는 프롤로그는 당연한 질문 하나를 던진다. 범인은 누구인가. 점으로 흩뿌려놓은 범인 후보들을 따라가면, 그들이 도착할, 혹은 도착한 세계와 만난다. 이해하지 못할 타인들이 주체와 객체가 되어 교차하고 만나고 관계를 맺는 장소.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랑하는 이마저 못 믿는, 그리하여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야 마는 인간이라는 비극적이고 딱한 존재에게 작가는 밀착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곳'에 사는 그들을 통해 은밀하게 물어온다. 당신은 사랑하는 이를 믿는가. 얼마나?

삼인칭 다중시점으로 쓰인 소설이다. 독자에겐 즐거우나 작가에겐 괴로운 시점이다. 화자 간의 물리적 거리가 멀수록, 각 화자에게 들이대는 카메라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더 힘들어진다. 처음에는 따로따로, 나중에는 합주를 해가면서, 하나의 음악으로 공명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어려운 일을 멋지게 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