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던 시속 100㎞ 그대로 돌진… 살인 흉기가 된 버스

고속으로 뒤따라오던 45인승 관광버스에 부딪힌 흰색 K5 승용차는 힘없이 튕겨나가 휴지 조각처럼 구겨졌다. 이 승용차를 운전하던 김모(25)씨는 중상을 입었고, 같이 탔던 20대 여성 4명은 현장에서 사망했다. 이 관광버스는 앞서 달리던 아우디 등 다른 차량 3대를 더 들이받은 뒤 터널 벽에 부딪힌 뒤에야 멈췄다.

지난 17일 오후 5시 영동고속도로 상행선 봉평터널 입구 부근에서 발생한 6중 추돌 사고의 참혹한 현장을 담은 블랙박스 영상이 18일 오전 자동차 커뮤니티인 '보배드림'에 공개됐다.

이 영상을 올린 촬영자는 사고 직전 1차로에서 2차로로 바꿔 사고를 면했지만 이 차량의 후방 카메라에 찍힌 사고 장면은 처참했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시속 100㎞로 질주하던 15t짜리 관광버스는 도로 위의 흉기였다. K5 차량은 종잇조각처럼 구겨졌고, 다른 차량도 앞뒤 차체가 심하게 찌그러지는 등 크게 파손됐다. 이 영상을 올린 제보자는 "저희 차 뒷좌석에는 제 귀여운 아들, 딸아이가 잠들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는 글을 남겼다. 숨진 여성 4명은 동네 친구로, 중국 대학에 다니다 방학을 맞아 귀국한 친구와 함께 동해안으로 피서를 다녀오는 길에 변을 당했다

사고 영상이 올라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단순 사고가 아닌 살인(殺人)이나 다름없다" "버스 운전사의 난폭 운전이 도가 지나쳤다"는 댓글 수백개가 올라왔다. 직장인 정모(여·32)씨는 "평소에도 버스 기사가 난폭하게 운전해서 가슴이 철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며 "영상을 본 이후로 손이 떨려 당분간 고속도로에 차를 몰고 나가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이번 사고를 수사 중인 강원 평창경찰서는 "영상을 볼 때 사고를 낸 버스가 시속 100㎞로 달리다 추돌 직전까지 속도를 줄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관광버스 기사 방모(57)씨는 경찰 조사에서 "2차로로 가다 갑자기 차량이 나타나 핸들을 1차로 쪽으로 꺾었고, 앞서 가던 차량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사고 영상을 분석한 경찰은 방씨가 줄곧 1차로에서 운전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방씨가 졸음운전을 하거나 전방을 제대로 주시하지 않은 혐의가 있다고 보고 방씨에 대해 구속 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 고속도로에서 대형버스(36인승 이상)가 낸 교통사고 건수는 지난 2012년 96건(사상자 587명)에서 2014년 149건(사상자 780명)으로 64% 이상 늘었다. 지난 1월에도 전남 곡성군 호남 고속도로에서 뒤에서 달리던 버스가 과속해 앞 버스를 추돌한 사고가 나 버스 운전자 1명이 숨졌고, 9명이 중상을 입었다. 장택영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박사는 "버스는 승용차보다 차고(車高·차높이)가 높고 중량이 많이 나가기 때문에 교통사고가 발생할 때 흉기로 돌변할 수 있다"며 "대형 차량이 주변에 있으면 안전거리를 추가로 확보하고 더 조심해서 운전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