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필수 관광 코스로… '콘텐츠의 힘'

지난 13일 저녁 대구시 대봉동 방천시장. '방천가족족발' 가게 앞에는 족발을 먹으려는 손님이 10여명 정도 번호표를 받고 서 있었다. 3년 전 문을 연 이 가게는 최근 월 매출 1억원을 찍었다. 방천시장에만 같은 점포를 3개나 냈다. 이 가게 한동엽 사장은 "손님의 절반 이상이 김광석 거리와 방천시장을 구경하러 왔다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지역 전통시장이 예술과 관광을 앞세워 새롭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김광석 거리로 유명한 대구 방천시장, 제주도의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 코스로 자리 잡은 동문시장, 전국의 예술 애호가들이 몰려드는 광주 대인시장 등이다. 소상공인진흥공단에 따르면 이처럼 관광·예술과 연계해 전통시장의 부활에 나선 곳이 전국에 75곳에 달한다. 중앙대 이정희 교수(경제학과)는 "전통시장은 지역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해왔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고유한 체취와 역사를 보고 싶어 하는 관광객들에겐 적합한 장소"라며 "전통시장 주변에 볼만한 관광 상품만 제대로 만들어내면 각 지역을 대표하는 중요한 자산이 된다"고 말했다.

◇관광으로 고객 끌어모으는 시장

이날 저녁 방천시장 옆에 있는 폭 3m의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김광석 거리)에서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려 하네~'라는 김광석 노래가 흘러나왔다. 300여m에 달하는 이 골목길의 담장에는 김광석이 기타를 치는 조형물과 사진, 노래 가사 등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20대 젊은 연인부터 어린아이 손을 잡고 나온 엄마까지 모두 김광석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천안에서 온 연분홍(26)씨는 "벽화를 배경으로 친구들과 사진을 찍기에 좋은 장소"라고 말했다.

방천시장은 한때 대구의 3대 전통시장으로 꼽히고 점포 수가 1000여 개를 넘을 정도로 번성했지만, 1990년대 들어서며 쇠락했다. 인근에 백화점이 들어서고 신흥 번화가가 생기면서 점포의 절반이 빈 채로 방치될 정도였다. 2009년 상인들은 지역 예술가들과 함께 아무도 다니지 않는 골목길에 김광석 관련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대봉동에서 태어난 김광석이 뛰어다녔을 방천시장을 그를 추모하는 공간으로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상인들은 젊은 예술가들에게 월 3만~5만원의 저렴한 월세로 빈 점포를 빌려줬다. 50여명의 예술가가 모여들었고 방천시장에 문화 공간인 '김광석홀'도 생겼다. 신범식 방천시장 상인회장은 "방천시장은 주말이면 하루 1만여 명이 찾는 대구의 관광 명소"라며 "관광객의 70％가 대구가 아닌 외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예술, 특산품 등으로 특화

인근의 유명 관광지와 결합해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곳도 있다. 제주도 이도일동에 있는 '제주동문시장'은 제주공항과 용두암, 올레코스 등 주요 관광지와 가까운 위치에 있다. 동문시장은 주변 관광지에 몰려드는 중국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제주도 특산품인 한라봉 주스, 과일맛 초콜릿 등을 판매하고 인근 관광지를 방문한 외국인들에게는 스마트폰으로 홍보 메시지를 전송했다. 관광객들이 인근 지역에 방문하면 중국어·영어 메시지가 자동 발송된다. 제주시도 '시티투어버스' 노선에 한라생태숲·노루생태관찰원·국립제주박물관·관덕정·용두암과 함께 동문시장을 포함, 동문시장을 관광지로 탈바꿈시켰다.

광주광역시 대인동에 있는 대인시장은 예술인들을 끌어들였다. 이 시장은 2008년 '광주비엔날레'를 개최한 것을 계기로 빈 점포를 전시 공간으로 이용하는 '복덕방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예술가들은 이곳에서 작업을 하며 시장 곳곳을 벽화와 설치미술 등으로 꾸미는 활동을 시작했다. 올해부터는 매주 토요일 '예술 야시장'을 열어 밴드 공연과 함께 반지 등 다양한 수가공품을 판매하고 있다. 광주 대인시장 홍정희 상인회장은 "예술 행사가 열리면서 일평균 유동인구가 200명에서 6000명으로 30배나 늘어났다"고 말했다.

경북대 장흥섭 교수(경영학과)는 "관광·예술로 성공한 전통시장은 전통시장을 찾는 행위 자체를 문화 상품으로 만들어 제공했다"며 "대형마트가 줄 수 없는 문화·예술·관광의 가치를 전통시장의 강점으로 살리는 전략은 다른 시장도 본받을 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