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평(三視世評)] 재밌긴 한데… 그저 '좋은 아내'로만 남을 거야?

잘나가던 검사였던 남편이 뇌물을 받아 감옥에 들어간 것도 모자라 외도까지 했다. 그가 다른 여자와 성관계를 갖는 장면은 인터넷을 통해 세상에 다 퍼졌다. 사람들은 그의 아내를 알아보고 비웃거나 동정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두 아이는 학교에서 놀림을 받는다.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지려면 아내는 일도 시작해야 한다. 그는 남편과 헤어지고 아이들을 데리고 새 출발을 해야 할까? 아니면 "믿어달라"는 남편 곁에 남아 그를 지지해줘야 할까?

빌 클린턴을 비롯한 미국 유명 정치인들은 성추문이 터질 때마다 아내를 대동하고 기자회견을 했다. 여기서 모티브를 얻은 미국 드라마 '굿와이프'(CBS)는 그 자리에 서야 했던 아내의 입장을 다루면서 호평과 인기를 얻었다. 지난 5월 미국에서 시즌7로 종영했고, 한국에서 같은 제목을 달고 리메이크했다. '칸의 여왕'이 된 이후 TV에서 볼 수 없었던 전도연이 이 작품으로 11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한 게 화제였다. 지난 16일 4회까지 방영한 '굿와이프'(tvN)는 시청률 5％대를 찍으면서 동시간대 케이블 1위에 올랐다.

리메이크작의 운명은 둘 중 하나다. '청출어람'이거나 '형만 못한 아우'이거나. '잘난 형'을 둔 '굿와이프'는 방영 전부터 '왜 아이돌 출신인 나나를 캐스팅했냐'는 비난과 '미국 법정물을 한국 TV에서 재현할 수 있겠냐'는 우려에 시달렸다. 원작이 종영했을 때 술을 마시며 눈물까지 흘렸을 정도로 열성팬이었던 변희원 기자는 1화가 끝나자 "이 정도면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단(나나)이 양성애자란 원작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나 서명희(김서형)가 김혜경(전도연)의 엄격한 멘토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제대로된 여성 캐릭터 탄생을 기대했다. 김혜경(전도연)이 자신을 무시하던 박도섭 검사(전석호)에게 '열심히 해야 뭐라도 되지'라며 웃으며 쏘아붙이는 것을 보고선 박수까지 쳤다."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 김윤덕 기자도, 미국 법정 드라마를 즐겨보는 양지호 기자도 첫회 전도연의 연기를 극찬하며 이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잔주름도 떨 만큼 섬세한 감정선 하나 놓치지 않는 전도연의 연기력, 천사인지 악마인지 모를 '경계 연기'를 노련하게 해내는 유지태의 재발견!"(김윤덕)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 건 2회부터다. 김혜경이 집에 찾아온 로펌 대표이자 연수원 동기인 서중원(윤계상)의 어깨에 기대 눈물을 흘린다.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서중원은 직장 상사 아닌가. 게다가 서중원은 왜 보모처럼 김혜경을 따라다니며 도와줄까. 자신도 변호사인데 그리도 한가한가?"(변희원) 윤계상 연기도 미덥지 않다. "나쁜 남자의 매력을 거의 보여주지 못한다. 라이벌인 유지태와 어찌 경쟁하려고?"(김윤덕) 3회가 끝난 뒤 양 기자는 혀를 찼다. "왜 김혜경이 들어가는 재판마다 같은 검사가 나오지? 또, 연수원 졸업한 지 15년 만에 법정에 선 변호사가 어떻게 매번 이기기만 하지?"

시사주간지 타임은 "굿와이프가 이 시대 페미니즘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굿와이프'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은 이 드라마의 핵심이다. 1회를 볼 때만 해도 시청자들은 한국에서도 지적이고 개성 있는 여성 캐릭터들의 활약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나올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2회부터 김혜경은 의뢰인을 위한 복수를 하려고 남편에게 "인맥을 좀 활용해달라" 부탁하는 '민폐녀'가 된다. 원작에서 김혜경 멘토 역할을 했던 서명희는 동생(서중원) 걱정이나 하는 누나로 전락하고, 수사에서 천재적인 실력을 내보여야 하는 김단도 김혜경을 위로하는 역할 정도로 활용된다. 변 기자는 "리메이크작이 원작보다 미스터리와 스릴을 강조한 것은 좋지만, 원작의 정수는 잃지 말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권력과 돈을 탐하는 남자 캐릭터들의 아귀다툼 속에서 오롯이 자신을 지켜내며 성장하는 여성 캐릭터를 한국 드라마에선 보기 힘든 걸까.'굿와이프'가 그저 좋은 아내로만 남지 않으려면 대반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