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관련 프로젝트에서 함께 활동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였다. 세 여자의 ‘먹방’이 시작됐다. 하긴 일을 마치고 고단한데다, 두어 시간 후면 저녁밥 때라 슬슬 배가 고플 시간이기도 했다. 뒷좌석의 내 옆에 앉은 40대 연극배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시간 내서 우리 꼭 초밥 먹으러 가요. 얼마 전 연습 마치고 하도 기진맥진해서 힘이 나는 거 먹으려고 두리번거리다 무작정 들어간 곳이 있어요. 갖가지 초밥에 튀김이며 우동이 한 세트로 나왔는데,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몰라요. 기운이 팍 나더라고요.”
앞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던 역시 40대의 문화기획자가 이어받았다. “저는 기운이 떨어지면 먹어야 하는 게 있어요. 그걸 먹으면 바로 기운이 솟아나거든요.” 뭐냐고 물었다. “낙지 탕탕이.” “뭐라 그랬어요?” “낙지 탕탕이!”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음식 이름이었다. “낙지만 아니라 육회가 함께 나오는 탕탕이를 먹으면 최고죠. 달걀 노른자를 얹어주기도 하는데, 그걸 풀지 말고 먹는 맛이 진짜예요. 어느 날 기운이 뚝 떨어져서 을지로 어딘가를 지나다가 간판이 눈에 띄기에 그냥 들어가 먹었어요. 금세 기운을 차렸다니까요.”
사진=조선일보DB
어머, 나는 그간 뭐 하고 살았나? 셋 중에 둘이 아는 걸 왜 나만 모르고 있는 거지? 무슨 대단한 요리인가 싶어 얼른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생낙지를 잘게 썰어서 파 송송 넣고 깨소금과 참기름에 버무린 것이었다. 탕탕 쳐서 토막을 낸다고 탕탕인가? 이름에는 정감이 갔지만, 클로즈업된 접시에서는 잘렸는데도 낙지 다리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육회가 꽈리를 틀면 낙지육회 탕탕이다. 식객들로 붐비는 탕탕이 음식점 사진이 줄줄이 떴다. 그러고 보니 보양식을 먹는 삼복이 걸쳐있는 때였다. 삼계탕 집만 미어터지는 게 아닌가 보았다.
세대차이 혹은 부러움
하기야 낙지는 지금으로부터 이미 2백 년 전, 보통 힘을 내는 게 아닌 음식으로 기록되고 있다.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흑산도에서 15년간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쓰러져가는 소에게 낙지 서너 마리를 먹이면 곧 강한 힘을 갖게 된다”고 ‘자산어보’에 적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낙지에는 타우린이며 인, 칼슘, 각종 무기질, 아미노산 같은 다양한 영양분이 들어있는 걸로 밝혀졌다. 그래서 ‘갯벌에서 나는 인삼’이라고까지 별명이 붙여졌단다.
낙지 탕탕이 검색에 빠진 내게 “무슨 음식을 먹으면 기운이 나느냐”는 질문이 날아왔다. “글쎄…, 호두 같은 견과류를 잔뜩 깔아서 구운 피칸파이와 달달한 밀크티?” 말해 놓고 보니 초밥이나 탕탕이와는 달리 너무 애들 입맛에다, 밥이라기보다 디저트가 아닌가. 그럴듯한 걸로 다시 답했다. “기름 쏙 빼고 폭 곤 닭백숙!” 생으로 먹는 것엔 입맛이 잘 당기지 않는다는 토를 달았다. 솔직히 음식에 대한 도전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혼자 식당에 들어가 먹는 것도 그렇다. 정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아무리 기운이 떨어졌어도 테이크아웃으로 집에 가져가 먹는 편이다. 아이들에게 맛도 보여주면서.
사실 나를 위해서는 혼자서 좋은 것을 잘 사서 먹지 못한다. 오랜 ‘직장 맘’이었던 데서 오는 애틋함이 마음 바닥에 자리해선지, 어쩌다 먹게 돼도 아이들부터 생각나 목에 걸린다. 그런데 죽어도 살아서 꿈틀거리고, 보아하니 가격도 만만찮은 낙지육회 탕탕이를 혼자 먹었다는 얘기에 세대 차이랄까, 부러움이랄까를 느꼈다. 재능이 넘치는 10여 년 아래 후배들이 가정과 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기운차게 쫓으면서 자신을 북돋우는 데 대한 부러움이다. 윗세대는 더했겠지만, 우리 세대 여자들도 전문분야에서 일하며 가정을 보살피노라면 자기를 위할 여력이 어디 있던가.
세상은 먹자판
세 여자의 먹방 이후, 마치 집 나간 애견을 수소문이라도 하듯이 나는 만나는 사람에게 마다 “혹시 낙지 탕탕이를 아냐?”고 물어본다. 다행히도(?) 내 주변에선 “모른다”, “처음 들어봤다”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아마 음식이란, 더구나 보양식이라든지 독특한 음식이란 끼리끼리 어울려 다니며 먹기 일쑤여서 초록은 동색이라 그런가 보다. 누구는 힘이 달리면 혼자라도 꼭 찾아가 먹는다는 음식이 누구에겐 전혀 낯 설은 음식이라니, 같은 지역에 사는 같은 한국인들인 거 맞아? 자문하면서 세 여자는 깔깔 웃었다.
참 오래된 질문 가운데 하나가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일 것이다. 요즘은 단연 먹기 위해 산다는 쪽으로 대세가 기울어가고 있는 분위기다. 채널마다 먹방은 물론이고, 요리를 시연하는 ‘쿡방’에다, 온갖 요리책이며, 조리법을 알려주는 레시피가 온오프로 사방에 퍼져있다. 복더위에는 대형 마트들의 요란한 마케팅까지 합세해 세상은 온통 먹자판이 되는 것도 같다. 저걸 먹지 않으면 건강을 유지하는데 문제가 생길 듯싶어지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진짜 문제는 먹지 않는 것 보다 넘치게 먹는 데서 온다고 하는데. 더구나 세상에는 끼니를 걱정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결국 무엇을 먹든지 중요한 건 누구와, 그리고 어떤 분위기에서 먹느냐가 아닐까. 우정과 사랑, 감사와 위로를 함께 나누는 음식이라면 그게 바로 보양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낙지 탕탕이도 좋겠지만, 소박한 멸치 국수 한 그릇에서도 무럭무럭 힘이 날 게 분명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