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으로 장 보고 퀵 배달… 市場이 달라졌다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상인회 건물 벽에 걸린 현수막에는 '망원시장은 전국 최초의 독립 생활인(1인 가구)들을 위한 시장입니다'고 적혀 있었다. 망원시장은 오는 22일부터 '식품 키트'를 판매할 예정이다. 볶음밥·칼국수 등 75가지 음식을 간편하게 만들 수 있게 2인분 재료를 손질해 상자에 담은 상품이다. 인근 서교·합정·망원동 일대에 1~2인 가구의 비중이 전체의 60%에 육박하는 점을 감안해 만든 상품이다. 서정래(55) 상인회장은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는 데 대부분 전통 시장은 여전히 대가족 기준으로 물건을 파는 게 사실"이라며 "전통 시장이 살아남으려면 대형마트처럼 1인 가구를 겨냥한 상품을 꾸준히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통 시장이 차별화된 상품과 서비스를 선보이며 새로운 성장을 모색하고 있다. 강력한 경쟁 상대인 대형마트를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소규모 포장 판매와 스마트폰 주문 등 대형마트를 벤치마킹하며 서로 윈·윈하는 상생(相生)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2004년 전국 1702개에 달했던 전통 시장은 2014년 1398개로 줄었다. 그 사이에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와 같은 대형마트는 전국 곳곳에 점포를 내며 480여개로 늘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관계자는 "남은 시장들에 대형마트와의 경쟁과 공존(共存)은 생존을 위한 절실한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으로 주문·배달…대형마트 못지않은 경쟁력

망원시장은 인근 대형마트와 갈등을 잘 풀어 활기를 되찾은 사례다. 3년 전 홈플러스가 직선거리 1km 안에 합정점을 내기로 했을 때 시장 상인들은 가게 문을 닫으며 항의했다. 이미 시장 근처에 홈플러스의 기업형 수퍼마켓(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들어온 상황에서 대형마트까지 입점하면 시장이 망가질 것으로 우려했다. 이에 홈플러스는 새 점포를 내는 대신 기존 SSM을 폐점하는 상생안을 냈다. 또 시장에서 주로 파는 국거리용 쇠고기, 오징어, 순대, 떡볶이 등 15개 품목은 합정점에서 팔지 않기로 했다.

망원시장 상인들도 스스로의 경쟁력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대형마트처럼 배송 서비스를 도입했다. '장보기 서비스'는 상인이 손님과 함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장을 봐주고 원하면 산 물건을 집까지 배달해준다. '걱정마요 김대리'라는 서비스도 내놨다. 예컨대 회식이나 야유회와 같은 회사 행사 때 전통 시장에 전화하면 필요한 물품을 각 점포에서 대신 사서 3시간 이내로 회사로 보내주는 식이다.

떡집을 운영하는 최태규(56)씨는 "새로운 서비스로 장보기가 편해지면서 지금은 대형마트 진출 전보다 매상이 30%쯤 올랐다"고 말했다.

대전 서구에 있는 한민시장은 이달 말 스마트폰으로 장을 보는 '주문 중개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손님이 스마트폰 앱(응용 프로그램)으로 물건을 고르면 상인회에서 시장 내 각 점포로 주문 내용을 전달하고 퀵서비스로 배달해준다. 김용길(54) 한민시장 상인회장은 "새 서비스로 장보기가 더 편해지면 올해 매출이 작년보다 20% 정도 많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전통 시장과 대형마트 간 상생 협력도 늘어

대형마트가 전통 시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대구 동구에 있는 목련시장은 올 4월 롯데마트 율하점의 지원을 받아 낡은 간판을 교체했다. 이는 작년 말 대구시에 있는 대형마트 18곳이 주변의 전통 시장 18곳을 일대일로 맡아 지원하기로 상생 협약을 맺은 데 따른 것이다. 대구 지역 대형마트는 직원을 뽑을 때 시장 상인 자녀들을 우대하기로 했다.

전통 시장에서 파는 상품을 대형마트가 팔아주기도 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전통 시장의 우수 제품을 선정하면 이마트가 판매를 맡는 식이다. 지난 5월에는 안동시의 구시장에서 팔리는 찜닭을 이마트에서 출시했고 한 달간 5000만원어치가 팔렸다.

박주영 숭실대(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대형마트에서 전통 시장 상인이 물건을 팔거나 전통 시장과 대형마트가 취급 품목을 나눠 판매하는 상생 모델은 다른 전통 시장과 마트에서도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