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앞선 천재의 삶 돌아보며… 해피버스데이, 백남준!

기록 매체였던 비디오를 예술의 영역으로 이끈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 인터넷이 탄생하기 한참 전인 1974년 '전자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highway)'를 예견한 '정보 무당'…. 살아 있다면, 20일은 백남준(1932~2006·사진)의 여든네 번째 생일이었다.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한국 작가이자, 시대를 앞서간 천재의 삶을 엿볼 행사가 풍성하게 열리고 있다.

생전에 백남준은 "내 생일은 별로 중요치 않다"고 하면서도 요셉 보이스, 존 케이지 같은 서양 동료의 '음력' 생일까지 꿰고 있었다고 한다. 서양 땅에 발붙이고 있었지만 동양 정신을 놓치지 않았던 그에게 '탄생'과 '죽음'은 존재의 유(有)와 무(無)를 가르는 경계 이상의 의미였다. 그 면모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전시가 있다. '백남준 전문가'인 김홍희 관장이 이끄는 서울시립미술관이 백남준 10주기 추모전으로 기획한 '백남준∞ 플럭서스'전(31일까지)이다. 국내외에 흩어진 소장품 200여점과 플럭서스 운동을 함께한 동료의 작품을 전시했다.

"You must be born."(너는 태어나야 한다) 1932년 6월 1일 자 뉴욕타임스에 빨간 색연필로 쓴 낙서가 눈에 띈다. 백남준이 1932년 4~6월 3개월치 뉴욕타임스를 모아 탄생 전 '태아 백남준'과 엄마, 아빠의 가상 대화를 낙서처럼 쓴 작품 '태내기 자서전'(1981년 작)의 한 페이지로, 아버지가 '태아 백남준'에게 한 말이다. 골동품 수집가였던 백남준에겐 오래된 신문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고, 신문 뭉치는 종종 비범한 예술 도구가 됐다.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휠체어 신세가 된 자신을 바퀴 의자에 앉은 TV 로봇으로 희화한 '자화상 달마 휠'(1998년 작), 둘째 누나 고(故) 백영득 여사가 시집갈 때 선물했다는 이층장 안에 사진과 훈장 등을 넣은 설치작 '시집온 부처'(처음 공개) 등 사연 가득한 작품들이 전시됐다.

20일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배움터에서 시작한 '백남준 쇼'(10월 30일까지)는 좀 더 대중적인 전시다. '지금도 우주 어디선가 여행하고 있을 백남준이 우주선 닮은 DDP에 착륙한다면?'이란 상상에서 출발했다. 로봇 TV 작품과 드로잉 등 100여점과 백남준의 사진 43점이 전시됐다. '예술은 페스티벌'이란 백남준의 정신을 기려 백남준의 작품과 지금 세대의 기술을 합쳐 세대를 뛰어넘은 협업을 보여준다. 하이라이트는 3D 영상업체 '디스트릭트'의 입체 영상을 만나 재탄생한 '거북'(1993년 작). 모니터 166개를 거북이 모양으로 만든 초대형(폭 6m·길이 10m) 비디오 설치물이 유선형 동굴처럼 생긴 DDP 배움터 전시장을 수놓으며 미래 공간에 우주선이 불시착한 듯한 착각을 준다. 관람권을 제시하면 전시장을 둘러싼 둘레길에서 열리는 청년 작가들의 미술 축제 '2016 아시아프 & 히든 아티스트 페스티벌'(8월 14일까지) 입장료를 1000원 할인받을 수 있다.

같은 날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는 '뉴 게임플레이'전(2월 19일까지)을 시작했다. '참여 TV' 등 백남준의 영상 작품 5점과 비디오 작가 빌 비올라, 마크 리 등의 작품 45점이 전시됐다. 대부분 관객이 게임하듯 참여할 수 있는 영상 작품이라 전시관 자체가 오락실 같다. 기획에 참여한 독일 영상전문 미술관 ZKM의 슈테판 슈빙글러 연구원은 "백남준은 기술을 이용해 영상을 변형한 인물로 '해커의 원조'"라며 "영상과 사운드를 합쳐 만든 디지털 게임이 백남준 작품의 연장선에 있다고 봤다"고 했다.

서울 창신동 197번지에서는 이날 퍼포먼스 행사 '헬로우 백남준'이 열렸다. 백남준이 유치원 때부터 경기고 시절까지 살았던 집터인 이곳에 오는 11월 백남준기념관이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