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하나로 써내려간 日 다이쇼 시대의 서정

사랑하지도 않으면서ㅣ다케히사 유메지 지음ㅣ정수윤 옮김ㅣ정은문고ㅣ191쪽ㅣ1만3800원

20세기 초 일본은 휙휙 바뀌고 있었다. 사무라이들이 휘젓던 열도에 밀려든 서양 문물은 기존의 문화와 가치관을 뒤엎어버렸다. 섬세한 감각을 타고났던 다케히사 유메지(1884~1934)는 평생을 흐르는 강물처럼, 일렁이는 돛단배처럼 그림 그리고 시를 쓰고 세상을 떠돌면서 눈물 떨구는 삶에 몸을 맡겼다.

이 책은 그 파란만장했던 예술의 기록. 바스러질 듯 가녀린 펜으로 흰 종이에 아련하게 그려낸 여인의 자태, 일명 '유메지식 미인도'와 더불어 짧지만 신비로운 글귀가 소복이 펼쳐진다. '울 수 있을 때 울도록 하자/ 실컷 울었다 싶을 때까지 울도록 해/ (…)/ 청춘이 차차 지나고 나면/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을 때가 오리니.'

무려 100년 전 고백인데 시공을 뚫고 뭉근하게 배어 나오는 공감과 감동이 맛깔스럽다. 일본 다이쇼 시대로 걸어 들어가 달빛 지저귀는 밤거리를 손잡고 걷는 듯한 느낌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