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독자, 내 詩語가 강철 같다더라"

"러시아에서 시낭송회를 했더니, 한 독자가 '당신의 언어는 사랑을 얼음도 깰 정도로 단단한 강철에 비유했다'고 하더라.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국제 시 축제'에 참가해 외국 시인들과 함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전통 시장에서 시를 낭송했다. 현지 신문(엘 파이스)에 '여러 시인 중 한국에서 온 문정희 시인이 성냥불을 그어대듯 시로 시장 전체를 불 밝혔다'는 기사와 함께 메가폰을 입에 댄 내 사진까지 실렸다."

문정희(69·사진) 시인이 지난 한 달 사이 한국 문학을 대표해 해외에서 주목받았다. 문 시인은 시선집 '지금 장미를 따라'(민음사)가 최근 러시아어로 번역돼 지난 8일 모스크바 국립 외국문학도서관에서 한국문학번역원 후원으로 시낭송회를 열었고, 지난 6월 초엔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국제 시 축제에 초청을 받아 참가했다. 문 시인 시집은 이미 11개 국어로 번역됐고, 2010년 스웨덴에서 제정한 시문학상 '시카다상'도 받아 국제적으로 지명도를 높여왔다. 문 시인은 "칠레에선 현지 청소년 1200여 명이 참가한 K팝 축제의 개막 무대에 올라 시를 읽었더니 너무 좋아하더라"며 "한류(韓流) 열풍을 문학에 접목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 시인은 모스크바에서 이근배·최동호 시인과 함께 연 낭독회에서 시 '겨울호텔'을 읽어 박수를 받았다. 러시아의 국민 시인 세르게이 에세닌과 맨발의 무용수 이사도라 던컨의 사랑을 노래한 작품이라서 러시아 독자들의 반응이 좋았다. '절뚝이며 따라온 달 속에서/ 밤새 늑대가 울어요/ 백야처럼 눈부신 무희의 맨발이/ 하늘도 뚫을 만큼 빛나는 시인의 이름을 불러요'라며 시작한 시였다. 에세닌은 18세 연상의 던컨과 결혼했지만, 신경쇠약증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청중 중 한 명은 "당신은 실제 사랑의 이야기만 쓰지 않고 뭔가 더 넣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문 시인은 "나는 시에 짐승의 울음을 넣었고, '미친 사랑의 끝은 고작 결혼이어야 했을까요'라고 물었다"라고 답했다.

문 시인은 "아르헨티나의 시장 골목에선 시 '꽃의 선언'을 고래고래 소리치며 읽었다"고 했다.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나의 성(性)을 사용할 것이며/(중략)/ 정녕 아름답거나 착한 척도 하지 않을 것이며/ 도통하지 않을 것이며/ 그냥 내 육체를 내가 소유할 것이다/ 하늘 아래/ 시의 나라에/ 내가 피어 있다'고 외친 시였다. 문 시인은 "러시아에서 권위 있는 루드미나 출판사에서 한국 시인으론 처음으로 내 시집이 나온 것은 한국어 강좌에 현지 학생 1000여 명이 수강 신청을 하는 현실을 반영하지 않았겠느냐"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