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기대감 없이 여행이 시작되었다. 일기예보는 지속적인 비 소식을 알리고 있었다. 예정된 일정이 장마 기간과 겹쳐진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큐슈 올레 길을 걷고 싶다'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강렬한 열망이 나를 이끌었다. 오래전 아버지의 모든 가족이 사가 현에서 거주를 하였다는 말을 듣고 성장한 내게 일본은 낯설지 않은 곳이다. 더구나 현지에는 지인들이 머물러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 여행의 중요 지점은 유후인에서 시작이 된다. 저녁이 어둠의 날개를 조금씩 펼치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유후인역에서 보이는 유후다케산은 운무가 하얗게 내려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어둠이 검은 망토를 펼치듯 짙은 청색의 빛깔로 변하기 시작하는 거리와 산 너머의 운무가 낯선 땅의 이방인에게는 수묵화 같은 느낌의 특별한 운치를 지닌 아름다움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낯선 곳 타국에서 비를 맞으며 걸었다. 출발 전의 불안감은 모두 잊고 그 특별한 시간을 서서히 마음에서 즐기기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로 생각하면 온천장이 있는 온양쯤의 도시가 되는 유후인의 저녁은 서울과는 달리 모든 가게의 불이 거의 꺼져 있었다. 시간은 7시가 조금 넘었는데 역에서 시작되는 상점가에는 불이 꺼져 있었고 편의점과 면세점만 붉을 밝히고 있었다.
숙소를 어떻게 찾아야 하나 망설이는데 택시가 다가온다. 휴(休)라고 쓰인 택시는 우리나라의 쉬는 차가 아니라 빈 차라는 말이 생각났다. 가야 하는 료칸의 이름을 알려주자 삼나무가 깊은 길을 따라가더니 외딴곳에 멈추었다. 단정하고 아담하게 지어진 료칸이라 생각하였는데 안으로 들어가자 뜻밖에 중국인 손님들도 많았고 식당도 휴게실도 잘 정리된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었다.
대중탕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내게 더욱 반가운 것은 룸에 설치된 작은 온천으로 일본의 목욕 문화를 실감하게 하는 곳이었다. 이들의 목욕문화는 우리나라의 때를 미는 습관하고는 다르게 습기가 높은 섬나라인 이유로 비누로 몸을 씻고 따스한 물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푸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었다. 나도 그 밤에 하늘이 보이는 작은 탕에 몸을 담그고 나무데크(deck) 위에 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면서 남의 나라 낯선 지역에서 낯선 문화를 즐기는 호사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