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 유치원버스에 갇힌 채… '8시간의 악몽'

4세 남아가 불볕더위 속 유치원 통학 버스에 8시간 가까이 방치됐다가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됐다. 보건복지부는 폭염에 어린이가 통학 버스에 갇혀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잇따르자 지난 2012년 인솔 교사가 어린이 전원의 등·하원 시간을 의무 기록하는 안전 강화 조치를 내놨지만, 이번에도 인솔 교사가 정확한 어린이 숫자를 파악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광주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후 4시 42분쯤 광주 광산구 월계동 모 유치원 인근 아파트 대로변에 주차된 25인승 유치원 통학 버스 안에서 김모(4)군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것을 운전기사 임모(51)씨가 발견했다. 임씨는 "하원 준비를 위해 버스 창문을 열다 차 바닥에 쓰러진 김군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당시 광주엔 낮 최고기온이 35.3도가 넘는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2014년 교통안전공단이 실시한 실험 결과에 따르면 폭염 기준인 섭씨 35도에서 실내에 주차한 차량은 2시간 동안 차량 내부 온도가 10도 정도 오르지만, 땡볕에 세워둔 차의 내부 온도는 70도를 넘는다. 대시 보드 쪽 온도는 90도 이상으로 치솟는다고 한다. 이는 일회용 가스라이터가 폭발해 화재가 발생할 위험도 있는 수준이다. 7시간 30여 분 동안 뜨거운 열기로 밀폐된 차량 내부에 갇혀 있던 김군은 체온이 40도까지 오르는 열사병 증세로 정신을 잃었고, 병원에 후송됐으나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김군은 이날 오전 9시 8분쯤 방학 기간 돌봄 교실에 참석하기 위해 유치원 통학 버스에 탑승했다. 하지만 2분 뒤 하차할 때 내리지 못하고 그대로 차량에 남았다. 당시 인솔교사 정모(여·28)씨는 전체 탑승 인원 9명 중 8명이 버스에서 내리도록 도운 다음, 차에 오르지 않고 고개만 안쪽으로 넣어 남은 아이가 있는지 살펴본 것으로 조사됐다. 버스 기사 이씨도 내부를 확인하지 않고 차량 외부 세차를 마친 다음 오전 9시 50분쯤 유치원 인근 대로변에 버스를 주차했다고 한다.

김군의 부모는 조선족이다. 2011년 남편(46)과 함께 한국에 온 김군의 어머니(37)는 "집에서 통학 버스로 유치원까지 2~3분이 걸린다"며 "그 사이 아이가 잠들었을 리 없는데 왜 내리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김군은 탑승 땐 뒤에서 세 번째 좌석에 앉았는데, 발견 당시엔 앞에서 두 번째 자리에 쓰러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인솔교사와 운전기사, 원장 박모(여·52)씨를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미국 국립안전위원회에 따르면 1998년부터 올해 7월 27일까지 부모의 고의 또는 실수로 한여름 더위에 달궈진 차에 갇혀 사망한 어린이 수는 총 684명으로 매년 30~40명의 아이들이 '찜통차' 사고로 사망한다.

올해도 20여 명이 목숨을 잃는 등 사고가 잇따르자 미국 정부는 살인 혐의를 적용해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 지난 2014년 미국 텍사스주(州)에서는 50도가 넘는 날씨에 아이를 차에 두고 일하러 간 엄마가 구속되기도 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아이를 부주의하게 버스에 방치해 재판에 넘겨져도 집행유예 형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아이들이 억울하게 희생되는 사고를 막기 위해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