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구청 빵집서 '장애인 제빵왕' 꿈이 익어간다

"오른쪽으로 돌리고…. 그렇지, 이젠 반대로."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본동 '꿈더하기 베이커리' 주방. 직원 박재언(22)씨가 공현숙(46) 점장이 가르쳐주는 대로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긴 초코 머핀 반죽을 저었다.

박씨는 지적장애인이다. 지난 10여년간 발달장애인을 위한 대안학교에 다니다 지난 6월 말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가게를 찾은 여학생들 사이에서 '훈남 오빠'로 불릴 만큼 준수하게 생겼다. 하지만 지적 능력이 비장애인보다 떨어져 신용카드 계산법이나 거스름돈 처리, 손님 응대는 미숙하다.

박씨는 무심코 맨손으로 머핀을 포장하다가 공 점장에게 "장갑 끼고 해야죠?"라는 말을 들었다. 지적장애가 있는 딸을 둔 공 점장은 "장애인이라고 배려만 하면 안 된다. 실수를 했을 땐 따끔하게 일러줘야 사회생활을 하면서 제 몫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꿈더하기 베이커리에서 자신과 비슷한 장애를 지닌 김동호(22)씨와 빵을 굽고, 커피를 만든다. 이들은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땄고,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촬영 장소였던 신길동 한국제과학교에서 제과·제빵 과정도 수료했다. "커피 만들기는 정말 자신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의 첫 직장인 꿈더하기 베이커리는 발달장애인들이 장애인 부모와 함께 운영하는 마을 기업이다. 지역 장애인부모회가 "아이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역할을 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영등포구에 요청했고, 구청이 이를 받아들여 2012년에 세웠다.

이 빵집은 구청이 소유한 건물에 자리 잡고 있다. 하루 매출액은 30여만원에 불과하지만, 구청이 연간 운영비 4000여만원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운영엔 문제가 없다. 구청의 도움으로 학교·어린이집·사회복지관 등에 빵을 납품할 길이 열려 일감도 늘어날 전망이다.

영등포구엔 발달장애인 910명이 살고 있다. 구청 측은 2013년부터 총 35명의 발달장애인을 시간제 근로자로 채용했다. 구청 측은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 발달장애인을 직접 채용하는 곳은 우리가 유일하다"면서 "지금도 10명이 구청 휴게실, 도서관 등에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청은 계약 기간 2년이 만료된 장애인에겐 지역 내 회사에 새 일자리도 주선한다.

영등포구는 지난 4월엔 주민참여예산 2억원을 들여 발달장애인 대안학교인 '꿈더하기 학교'도 열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지난달 전국 126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한 매니페스토(대국민 정책 계약) 우수 사례 경진대회에선 '주민참여분야 최우수상'을 타기도 했다.

서울시 발달장애인 2만8808명 중 시가 마련한 일자리를 얻은 사람은 639명뿐이다. 발달장애인이 성인이 되면 사실상 사회에서 방치되다시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5월엔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발달장애인 직업교육과 지원 체계를 개선하라'며 시청 앞에서 6주간 농성을 했을 정도다. 조길형 영등포구청장은 "자치구 차원에서 발달장애인들의 자립을 돕는 작은 규모의 사업을 해 나가다 보면 서울시나 정부도 관련 정책을 세우는 데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