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복잡한 세상만사, 수학 공식처럼 풀 수 있다면…"

직장인 김모(38)씨는 작년 연말에 한 수학 학습지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자녀들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문제집을 받아보기 위해서다. 그 덕분에 고등학교 때도 제대로 못 풀었던 미적분을 지금은 척척 풀어낸다. 간혹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주말에 몇 시간씩 머리를 싸매고 낑낑거리기도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속이 후련하다. 김씨는 "어려운 문제를 풀고 나면 가끔 머리가 뻥 뚫리는 느낌"이라며 "노력하는 만큼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는 수학의 세계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김씨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김건희 구몬수학 과장은 "작년 연말 대비 6개월 사이에 약 16% 정도 성인 회원이 늘었다"며 "수학 문제를 풀면 '힐링'이 된다는 분들도 많다"고 했다. 한 직장인 구몬 회원은 "복잡한 세상만사 다 미적분처럼 규칙대로 풀린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도 했다. 물론 자녀의 공부를 봐주기 위해 다시 수학을 공부하는 학부모도 있고, 태교를 위해 수학 문제를 푸는 임신부들도 있다.

서점에서도 성인용 수학책이 쏟아지고 있다. 올해 2월 출간된 이언 스튜어트의 '세계를 바꾼 17가지 방정식'(사이언스북스)을 비롯해 올 상반기에 나온 책만 스무 종이 넘는다. '세계를 바꾼 17가지 방정식'의 경우 중학 시절 배운 피타고라스의 정리, 고등학교에서 배운 로그 함수, 카오스이론 등 방정식 17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결코 만만치 않은 내용이지만 출간 2주 만에 2쇄를 찍었고, 한 달 반 만에 3쇄를 찍으며 화제를 모았다. 이은영 사이언스북스 부장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수학책은 내봐야 안 팔리는 책으로 분류됐는데, 최근 분위기가 확연히 바뀌었다"며 "수학의 역사나 일상(日常)에서 접할 수 있는 문제를 수학적으로 어떻게 해결하는지 보여주는 책이 인기"라고 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수학개념 100'(반니)은 택배 기사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소포를 배달하기 위해 어떤 순서로 움직여야 하는지 풀어보고, 구글 번역기의 작동 원리를 확률로 소개해준다. 기둥을 휘어지게 하는 힘을 계산하는 방정식을 롱다리의 약점으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자외선 차단지수, 체질량 지수 산출 방식 등을 풀어준 '세상의 모든 공식'(반니)도 인기다. 최근엔 '하루 10분 수학습관'(살림프렌즈) '수학에서 꺼낸 여행'(휴머니스트) 등 퀴즈나 여행 등의 테마를 수학과 연결하기도 한다.

이는 몇 년 전부터 초등학교 교과 과정을 중심으로 이른바 '스토리텔링식' 수학 교육이 도입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을 위한 최소한의 수학' 등을 펴낸 궁리출판 이갑수 대표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스토리텔링식 수학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성인들도 수학을 단순히 어려운 공식으로만 보지 않게 됐다"며 "수학이나 자연과학을 테마로 한 교양서의 경우 일종의 '고정 독자층'이 확대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은 서점의 매출 분석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인터넷 서점 예스24에서 올해 나온 수학 관련 도서 판매량을 비교한 결과,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0%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독자층은 중장년이 절대다수. 예스24에서 '세계를 바꾼 17가지 방정식'을 구입한 고객의 경우 40대 남성이 28.5%, 40대 여성이 24.7%로 40대 독자가 53%를 넘게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40대가 중·고등학교 자녀를 둔 연령대라는 점에서 자녀의 수학 교육에 대한 관심이 수학 관련 교양서적 구매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보통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수학책'을 펴낸 출판사 이랑의 이영희 대표는 "옛날 같으면 참고서나 사다줬을 부모들이 이런 책을 집어들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지적(知的) 풍토에 큰 변화가 오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엄상일 KAIST 수리과학과 교수는 "내비게이션이나 자율주행차, 일기예보, 사드 배치 등 최신 뉴스 하나를 이해할 때도 수학을 알면 이해의 깊이가 달라진다"며 "어떤 사회적 이슈가 생겼을 때 감성에 치우치는 경향이 심했던 우리 사회로선 매우 긍정적인 변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