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바다 대신 좀비… 공포 피서 떠나는 청춘들

"꺅! 어떻게 해!"

지난 31일 오후 2시 경기 광명시에 있는 '광명동굴 귀신의 집' 안에서 연신 비명이 터져 나왔다. 높이 2m 남짓한 어두운 통로 저편에서 하얀 소복(素服)을 입은 여자 귀신이 나타나자 10여명의 관람객이 뒷걸음치며 소리를 질렀다. 귀신들이 손을 불쑥 내밀며 관람객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자 결국 한 여성 관람객은 눈물까지 보였다. 처녀 귀신과 프랑켄슈타인 등 동·서양 귀신이 총출동하는 이곳은 광명시에서 2014년부터 운영 중인 공포체험 테마파크다. 여자친구와 함께 온 직장인 장규석(27)씨는 "덥지만 먼 곳으로 갈 여유가 없어서 동굴 피서를 왔다"며 "깜짝 놀랄 때마다 소리를 질렀더니 쌓였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이어지는 요즘 20~30대 사이에선 '공포 피서'가 유행 중이다. 멀리 휴가를 떠날 만한 금전적·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종의 대안 휴가로 인기다. '귀신의 집'을 운영 중인 광명시 관계자는 "올해(7월 기준) 방문객은 72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시점보다 40%가량 늘었다"며 "불경기 탓인지 가까운 국내 피서지를 찾는 20~30대 관람객이 특히 늘어난 덕분"이라고 했다.

작년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서 시작한 공포 연극 '귀신의 집'도 여름철이 대목이다. 연극배우와 무대 소품 담당 등이 아예 '공포의 집' 콘셉트로 연극을 해보자며 올린 작품이다. 불경기인 대학로 연극판에서 작년에만 유료 관객 2만명을 기록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귀신의 집' 관계자는 "올해는 7월 한 달간 찾은 사람이 5000명이 넘는데, 지난해보다 20% 증가한 것"이라며 "피서를 하러 온 20대가 절대다수"라고 말했다.

식당이나 술집도 '공포 피서족(族)'을 겨냥한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서울 서교동에 있는 한 술집에선 최근 어두컴컴하게 인테리어를 꾸며 놓고, 30분에 한 번 음산한 음악과 함께 직원들이 '좀비'로 분해 손님들을 놀라게 하는 이벤트를 하고 있다. 여름철이면 오후 6시부터 기다리는 줄이 생길 정도로 인기다. 서울 역삼동에 있는 한 식당은 해골이나 피 묻은 손바닥 모형 등으로 인테리어를 해놓고, 테이블 곳곳엔 음료를 담은 병원 링거를 매달아 놓았다. 식당 최민준(28) 사장은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방문객이 30% 이상 늘어 하루 500~600명 정도 찾고 있다"고 했다.

한때 유행했던 '흉가(凶家)·폐교 체험'도 요즘 세태에 맞게 부활 중이다. 휴가 갈 여유가 없는 20대들이 아프리카TV 등 인터넷 개인 방송으로 이른바 '흉방(흉가 체험 방송)'·'공방(공포 방송)'을 보는 것이다. 인기 BJ(방송자)들이 직접 흉가에 가서 경험한 영상을 보거나, 다른 시청자와 무서운 이야기·영상 등을 공유하며 일종의 대리 만족을 느낀다고 한다. '흉방'을 자주 본다는 대학원생 원지연(여·27)씨는 "더울 때는 휴대전화를 이용해 무서운 영상을 찾아보며 집 안에 있는 게 나만의 피서법"이라고 말했다.

이런 '흉방' 마니아들끼리 모여 방송에 나온 흉가로 직접 체험도 떠난다. 이런 흉가 체험을 알선하는 인터넷 카페만 5~6개가 생겼다. 지난달 9~10일 인터넷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포항으로 1박 2일 '흉가 체험'을 다녀온 대학생 신모(28)씨는 "연출된 무서움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공포'를 느끼고 싶었다"며 "흉가 체험은 무엇보다 별로 돈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