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침일 따라 '누진제 폭탄' 최대 2배 더 세진다

전기요금 누진제로 인한 '전기요금 폭탄'에 대한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검침일(檢針日)'에 따라 요금이 몇 배 차이가 날 수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한국전력은 인력 부족을 이유로 검침일을 가구마다 다르게 운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7월과 8월 두 달간 한 달(1일~말일) 전력 사용량이 450㎾h씩 똑같이 900㎾h를 쓴 두 가구가 있을 때〈그래픽 참조〉 검침일이 요금 산정에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

A가구는 검침일이 매달 1일이라 450㎾h가 사용량 기준이 되면서 8월 전기요금을 10만6500원만 내면 되지만, B가구는 검침일이 22일이다 보니 하필 사용량이 많았던 기간이 합쳐져 요금 부과 기준 사용량이 600㎾h로 변하면서 결과적으로 전기요금도 2배 많은 21만7300원으로 뛴다. 누진제로 단위요금이 최고 11.7배까지 폭등하는 6단계 구간(사용량 501㎾h 이상)에 걸리기 때문이다.

◇검침 인력 부족으로 전기요금 부과 기준 제각각

한전은 전기요금을 부과하는 기준을 검침원이 계량기를 점검한 날부터 그 이전 한 달 사용량으로 잡고 있다. 그런데 전국에 계량기는 2300만대인데 검침원은 2900여명. 인원이 부족하다 보니, 지역별로 검침하는 날이 다르다. 한전이 운용하는 검침일 구간은 모두 7개. △1차에 해당하는 가구는 매월 1~5일 사이 검침하고(25일까지 요금 납부) △2차 8~10일(말일) △3차 15~17일(다음 달 5일) △4차 18~19일(다음 달 10일) △5차 22~24일(다음 달 15일) △6차 25~26일(다음 달 20일) △7차 말일(다음 달 18일) 등으로 나뉜다.

그달 1일부터 마지막 날까지 쓴 전력량을 기준으로 한 달 전기요금을 정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같은 지역이라도 구나 동에 따라 한 달로 잡히는 기간이 제각각이고, 바로 옆집도 다를 수 있다. 어떤 주택은 1~30일 사용량, 다른 주택은 그달 10일에서 다음 달 10일까지 쓴 전기량이 요금 부과 기준이 되는 구조다. 요금 고지서를 청구하는 날도 검침일에 따라 다 다르다.

한전 자료에 따르면 전국 2300만 가구 중 매월 1~5일 검침하는 가구는 25.7%, 8~10일이 25.9%이며, 15~17일은 15.3%, 18~19일 9.7%, 22~24일 14.5%, 25~26일 8.9%, 나머지는 말일이다.

◇검침일은 한전이 일방적으로 결정

한전 관계자는 검침일에 따라 요금이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론적으로 맞는 얘기"라면서도 "검침일에 따라 요금이 달라져 상대적인 손해를 보는 가구가 얼마나 되는지 아직 조사한 적은 없기 때문에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검침일은 한전이 일방적으로 정하고 있으며, 개별 가구에서 요청해도 바꿔주지 않는다.

다만 한전도 이 같은 검침일 체계의 문제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원격으로 검침할 수 있는 스마트 계량기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국 가구 중 10%가량에 스마트 계량기를 달아줬으며, 2000억원을 들여 2020년까지 전국 모든 가정으로 이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이 같은 검침일의 구조적 모순은 누진제라는 요금제가 갖고 있는 문제점에서 파생되는 것"이라면서 "검침일을 어떤 식으로 나누더라도 많은 구간에선 누진율이 달라지면서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누진율을 완화해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