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카, 남성 몸 속에서 6개월 넘게 생존했다"

18일 새벽 5시 13분 인천국제공항 26번 게이트 앞 검역대.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날아온 대한항공 KE062편에서 승객 204명이 쏟아져 나오자 마스크에 장갑을 낀 국립인천공항검역소 소속 검역관 6명도 덩달아 바빠졌다. '지카 바이러스 오염 지역'으로 지정된 30개국 중 하나인 브라질에서 입국하는 승객들에 대해선 지난 2월부터 적외선 카메라를 통해 발열 여부를 감시하는 것은 물론 목 주변 체온까지 일일이 측정하는 '검역 전쟁'이 7개월째 벌어지고 있다.

◇새로운 사실 드러나는 '조용한 전염병'

18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국내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는 지금까지 9명 발생했다. 브라질이나 필리핀 등지에서 감염돼 입국한 이들은 현재 발열 증세가 사라지는 등 모두 완쾌돼 지카 바이러스가 '별것 아닌 감염병'이란 생각도 퍼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지카 바이러스가 그간 알려진 것보다 위험할 수 있다는 새로운 과학적 사실들이 속속 제시돼 "경각심을 더 높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우선 최장 두 달 정도로 알려졌던 지카 바이러스의 생존 기간이 6개월을 넘는다는 조사 결과가 최근 나왔다. 지난 11일 국제 의과학 저널 유로서베일런스에는 '남성의 정액에서 최대 188일 생존한 지카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내용의 논문이 발표됐다. 이에 '위험국을 다녀왔을 경우 두 달간 성 접촉을 피해야 한다'는 우리와 세계 각국의 권고 내용도 수정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도 남성에게 지카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는 논문도 나와 '남성→여성'에게만 지카 바이러스가 옮긴다는 지금까지의 통념도 깨졌다. 지카 바이러스 발생국에 다녀온 일반 여성들도 남성처럼 일정 기간 성 관계를 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지카 바이러스는 매개 모기나 성 접촉, 헌혈 등을 통해 감염된다고 알려져 왔지만 이 같은 경로와는 상관없이 지카 바이러스 환자의 가족도 감염된 사례가 나왔고 ▲임신 초기뿐 아니라 임신 말기에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태어난 신생아가 추후 소두증에 걸린 사례 등도 국제 학계에 보고되고 있다. 미국 뉴욕시에선 임신부 49명이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확진되고 지난달 지카 감염 산모가 소두증 신생아까지 출산해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토머스 프리든 소장은 지난 8일 미국의학협회지(JAMA)를 통해 "지카 바이러스는 감염돼도 증상이 약한 '조용한 감염병(silent epidemic)'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증세가 약하다고 경각심을 풀었다가는 나중에 자칫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감염병 전문가인 이근화 제주대 의대 교수는 "브라질 올림픽 기간인 데다 여름 휴가철 동남아 방문객도 많은 시점이라 일단 감시 체계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 측은 "앞으로 세계보건기구(WHO) 등에서 제시하는 권고안이 바뀔 경우 우리도 예방 수칙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해외 유입 감염병 '비상'

지카 바이러스뿐 아니라 뎅기열·말라리아 등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가 감염병에 걸리는 사례도 해마다 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감염병 감시연보'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해외 유입 감염병 건수는 100~200건 수준이었는데 차츰 늘어나 작년엔 491건에 이르렀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은 지난해 단 한 차례 유입만으로 38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켜 '메르스 악몽'을 겪어야 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센터장은 "특히 중동 지역을 다녀온 뒤 발열 등 이상 증세가 나타나면 병원을 찾기에 앞서 질병관리본부 콜센터(1339번)에 전화해 상담하고, 여행력을 꼭 밝혀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