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입은 과일·떼죽음 물고기… 농수축산물 피해 최소 125억

"이번 주말이면 남은 우럭도 모두 죽을 겁니다. 보름 넘게 바닷물이 30도가 넘는데 물고기가 견딜 수가 없어요."

지난 17일 충남 태안군 안면읍 대야도항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5분을 나가야 하는 해상 가두리 양식장. 양식장 인부들이 죽은 우럭들을 건져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양식장 수면은 썩은 우럭으로 가득 차 있었고, 수면 바로 밑에도 죽기 직전의 우럭들이 힘없이 떠다니고 있었다. 비릿한 썩은 내가 진동했다. 작업반장 정종화(49)씨는 "2013년에도 폭염 피해가 있었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처음 본다"며 "죽은 우럭들을 떠내는 게 벌써 며칠째인데 끝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우럭 100만마리를 키우는 이 양식장에선 18일까지 총 70만마리가 폐사한 상태다. 양식장 주인 서재문(64)씨는 "추석부터 올해 연말까지 출하하려고 2년 넘게 키운 우럭이 모두 죽어버렸다"며 "양식장을 하는 다른 집들도 사정이 마찬가지라 동네 전체가 초상집 분위기"라고 했다. 안면도해산어양식협회에 따르면 안면도 일대에서만 최소 10여 군데의 우럭 양식장에서 집단 폐사가 발생해, 최소 50억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폭염 직격탄 맞은 농·축·수산물

연이은 폭염에 농·축·수산업계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양식장 어류와 가축들이 집단 폐사하고, 농작물로도 폭염 피해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전남 완도에서는 지난 12일부터 10여 개 마을 양식장에서 전복 수십만 마리가 집단 폐사했는데, 관련 당국이 폭염과의 연관성을 조사 중이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폭염으로 인한 높은 수온 때문에 18일까지 84만5700마리의 강도다리, 넙치, 전복 등이 폐사해 11억3000만원 상당의 피해가 발생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닭은 339만6000마리, 오리는 11만6300마리, 돼지는 6300마리 등 총 354만9000마리의 가축이 폭염으로 폐사해 113억6900만원의 재산 피해를 냈다. 이미 지난해(253만3000마리)보다 40%나 많은 가축이 폐사했다.

 

농산물도 폭염 피해를 입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한낮 기온이 34.8도까지 오른 지난 17일, 강원 원주시 부론면에서 1만4850㎡(4500평) 규모의 사과 과수원을 하는 안만희(60)씨는 "사과 농사 18년 만에 이런 폭염 피해는 처음"이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안씨의 사과밭에는 마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고랑마다 낙과(落果)한 사과가 수십 개씩 나뒹굴었다. 무더위 때문에 열과(裂果·열매가 갈라지는 것) 현상이 발생해 사과가 떨어진 것이다. 나무에 매달린 사과들도 강한 햇볕에 노출된 탓에 과실이 타들어가는 일소(日燒) 피해를 입고 있다. 안씨는 "전체 물량의 절반 정도가 일소 피해를 입은 것 같다"고 말했다.

복숭아 농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고온 탓에 과실이 덜 큰 상태에서 빨리 익어버려 생육이 예년만 못하다. 복숭아잎과 과일에도 일소 현상이나 열과 현상이 흔하게 목격됐다. 여기에 복숭아순나방 등 해충 피해도 빠르게 확산되면서 농민들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강원 춘천시 동내면에서 1만6500㎡(5000평) 규모의 복숭아 농장을 운영하는 김진석(62)씨는 "일소 피해를 본 과실의 경우 햇볕에 덴 부분이 썩고 병충해가 생겨 빨리 제거해 줘야 하는데 피해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대부분의 농가가 손도 못 쓴 채 2차 피해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물가 영향 제한적일 것"

이번 폭염에선 양식 어가의 피해가 특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재해보험 가입률이 98%에 달하는 축산 농가와 달리, 전체의 31.3%만 보험에 가입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높은 수온으로 인한 피해는 특약에 가입해야만 보상을 받을 수가 있는데, 전체 양식어가 9775가구 중 고(高)수온 특약보험에 가입한 곳은 전체의 1.5%(146가구)에 불과하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 농어업재해대책법상 정부 지원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경우 정부 지원 금액은 보험금에 크게 못 미친다. 어민들은 죽은 물고기의 판매가를 기준으로 피해 금액을 매기는 반면, 정부는 죽은 물고기의 치어(稚魚)를 구입해주는 비용을 계산해서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정부는 양식 어가가 입은 피해 금액도 이 기준으로 집계한다. 그래서 정부가 집계한 어민들의 피해 규모는 실제 어민들이 느끼는 피해 규모보다 적게 집계된다.

정부는 이번 폭염 피해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축산물 중 폐사량이 가장 많은 것은 닭인데, 폐사한 닭 339만6000마리는 전체 사육 닭(1억8070만4000마리)의 1.9% 수준이다. 사과·배·돼지·밤·대추 등 추석 성수품 10대 품목도 대체로 가격이 안정적이고, 배춧값만 일부 뛰었다. 정부 관계자는 "농축수산물의 생산 물량이 워낙 많기 때문에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