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8.19 01:48

[리우올림픽 탁구 대표팀서 활약, '우리 영식이'가 된 정영식 선수]

다섯 살 때 아버지 꿈 이어 시작, 中 경기 유튜브 영상 다 본 '독종'
"펜싱 박상영처럼 '할 수 있다' 주문… 4년 뒤 도쿄올림픽 기대하세요"

"말 한마디의 힘이 그렇게 클 줄 몰랐어요."

18일(한국 시각) 리우올림픽 남자 탁구 단체 3~4위전(독일전)에서 극적인 1단식 승리를 따낸 정영식(24)은 코트에 누워 포효했다. 마지막 세트에서 8―10으로 뒤질 때는 '졌구나!'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불현듯 '할 수 있다'는 외침으로 극적인 금메달을 거머쥔 박상영(펜싱)이 떠올랐다. 그는 "박상영 선수가 '할 수 있다'를 두 번 외쳤다기에, 나는 세 번을 되뇌었다"고 말했다. 정영식은 이 게임을 듀스로 끌고 가 역전승했다.

이날 정영식의 선취 승리에도 한국은 독일에 져 동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하지만 단식부터 단체전까지 최강 중국을 상대로 보여준 '우리 영식이' 정영식의 투지는 돋보였다. '국내용' 선수란 꼬리표가 붙었던 그는 올림픽을 통해 '한국 탁구의 미래'로 거듭났다. 마지막 경기 후 돌아서는 정영식의 눈가는 촉촉했지만,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 탁구 인생도 리우 하늘처럼 창창할 겁니다.” 리우올림픽에서 최강 중국을 상대로 투혼을 발휘해 한국 탁구의 새 희망으로 떠오른 정영식. 18일(한국 시각) 리우올림픽 선수촌 잔디밭에 팔베개하고 눕더니 “리우 하늘을 처음 본다”며 활짝 웃었다.
“내 탁구 인생도 리우 하늘처럼 창창할 겁니다.” 리우올림픽에서 최강 중국을 상대로 투혼을 발휘해 한국 탁구의 새 희망으로 떠오른 정영식. 18일(한국 시각) 리우올림픽 선수촌 잔디밭에 팔베개하고 눕더니 “리우 하늘을 처음 본다”며 활짝 웃었다. /남강호 기자
정영식은 유튜브에 있는 중국 선수 경기 영상을 모두 돌려봤을 정도로 열심인 공부벌레다. 쉬는 날에도 침대에 누워 탁구 영상을 보는 그에게 태릉선수촌 선배들은 "당장 나가서 놀아라. 오늘 숙소에 들어오면 혼난다"고 했을 정도다. 그는 "남보다 부족한 운동신경이나 기술 차를 극복하기 위해 상대를 연구하고, 약점을 끊임없이 파고들기 위해 공부를 하는 수밖엔 없다"고 말했다.

정영식은 아버지의 강력한 권유로 다섯 살 때부터 라켓을 들었다. 고교 때까지 탁구 선수로 뛰었던 정영식의 아버지는 집안 형편 때문에 포기했던 꿈을 아들이 이뤄주길 원했다. 바둑이나 만화책 보기를 더 좋아했던 정영식은 '어쩔 수 없이' 운동을 하는 날이 많았다.

탁구에 본격적으로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건 2004 아테네올림픽 때다. 당시 유승민(34)이 중국 왕하오를 꺾으며 기적 같은 우승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곤 '나도 꼭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다'는 마음이 처음 들었다고 한다. 정영식은 "그 경기가 끝난 게 저녁이었는데, 바로 탁구장으로 달려가 밤늦게까지 서브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유승민이 탁구의 재미를 알게 했다면, 소속팀(미래에셋대우) 김택수 감독은 운동을 계속할 수 있게 한 은인이다. 김 감독은 고교 때까지 또래 경쟁자들에 비해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정영식의 가능성을 보고 그를 데려왔다.

정영식은 "내가 못할 때나 잘할 때나 감독님은 늘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 위로해주셨는데, 정말로 포기하고 싶을 때 큰 힘이 됐다"고 했다.

곱상한 외모와 달리 정영식의 별명은 '독사'다. 상대가 지칠 정도로 독하게 물고 늘어지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그에게 질 때마다 "또 독사에게 물렸다"고 농담을 던진다. 연애도, 컴퓨터 게임도 시큰둥한 정영식은 "라켓을 잡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새벽 2시 넘어서까지 잠 못 이룰 정도로 긴장됐던 첫 올림픽. 정영식은 "이번 대회 가장 큰 자산은 경험"이라고 했다. 그는 "4년 뒤 도쿄올림픽에선 동료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에이스로 다시 메달에 도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인터뷰가 끝나고 사진 촬영을 위해 잔디밭에 누운 정영식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리우에 와서 하늘을 올려다본 건 처음인데 정말 푸르네요. 앞으로 펼쳐질 제 탁구 인생도 이렇게 창창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