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평(三視世評)] 영화관 밤샘 피서, 하루쯤은 괜찮네

"요즘 더워서 아무것도 못 하겠다. 영화 보는 거 말고는 할 게 없다."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34.9도를 기록한 20일 밤 11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맞은편에 있는 한 영화관 매점 줄에 서 있던 30대 여성이 말했다. 줄은 꽤 길어서 20~30대 관람객 수십 명이 10분 이상 기다려 음료수와 팝콘을 받아가고 있었다. 열대야를 피해 '무비올나잇' 티켓을 끊고 영화관으로 숨어든 관객들이다.

낮에는 폭염을 피해 백화점과 대형마트로 숨던 사람들이 밤이면 열대야를 피해 영화관을 찾는다. 2012년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여름(6~8월)이면 좌석 점유율이 50% 이상 높아진다. 이날 '올나잇' 상영에 들어간 3개 상영관별 좌석 점유율은 80% 수준. 세 기자는 영화 '터널' '덕혜옹주' '마이펫의 이중생활'을 연달아 상영하는 8관(정원 180명)을 찾았다. 제일 앞줄 A열 일부와 단체 관람을 취소한 듯한 C열 한 줄을 제외하고는 가득 차 있었다.

상영관 내 온도는 23~24도가 유지됐다. 영화 한 편이 끝나고 쉬는 시간마다 직원이 상영관에 들어와 온도를 체크했다. 양지호 기자는 "에어컨 바람을 쐬겠다"며 재수 시절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잠을 포기하고 영화를 보러 왔다. 박상현 기자는 "집에서는 전기세 때문에 에어컨을 10분 틀고 50분은 꺼 놓는데, 이곳이 천국"이라고 말했다.

에어컨 바람이 마냥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양 기자는 '덕혜옹주'가 중반에 도달한 새벽 3시쯤 춥다고 몸을 덜덜 떨며 갈아입으려 가져온 반소매 티셔츠를 껴입었다. 익숙하지 않은 찬 바람에 장시간 노출되자 몸이 놀란 것이다. 영화관은 1000원짜리 무릎담요를 판매한다고 홍보했지만 이날은 물건이 동나 팔지 않았다. 몇몇 '베테랑'은 집에서 가져온 담요를 몸에 둘렀다. 변희원 기자는 "그래도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춥다'는 말을 해본 게 언젠지 모르겠다"며 "체력은 좋고 지갑은 가벼운 20대가 싸게 즐길 수 있는 피서법"이라고 했다.

영화관의 밤샘 프로그램은 새로운 상품은 아니다. 영화관마다 정기·비정기로 밤샘 상영을 하곤 했다. 하지만 변 기자는 "과거엔 인기 없는 영화 '끼워팔기'가 문제였는데 이번에는 블록버스터·사극·애니메이션의 조합이 괜찮다"고 평했다. 대학생 때부터 밤샘 영화를 즐겼다는 박상현 기자는 "요즘 영화 보려면 1편에 1만원 넘는 돈이 들기 일쑤인데, 영화 세 편 관람료 1만8000원에 팝콘과 음료수도 하나씩 주니 합리적"이라고 거들었다.

11시 20분부터 상영한 세 편의 영화는 오전 5시 30분에 모두 끝났다. 불이 들어온 것도 모르고 곤히 잠든 관객은 2명뿐이었다. 관객 대부분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데 성공했다. 쑤신 허리를 두드리며 집으로 향했다. 잠시 눈을 붙이고 출근해야 하는 양지호 기자가 한탄했다. "에어컨 바람 좀 쐬겠다고 출근 앞두고 밤을 새우다니. 뭣이 중헌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