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살고 있었다, 그 도시 역사의 흔적이

동물원 기행ㅣ나디아 허 지음ㅣ남혜선 옮김ㅣ어크로스ㅣ408쪽ㅣ1만7000원

파리의 작은 동물원 '메나주리'는 본래 왕실 정원이었다. 그러나 호화로운 동물원을 짓고 사냥을 즐기며 농작물을 망가뜨리던 18세기 귀족들의 행태가 프랑스 대혁명에 불을 지르면서 급진주의자들은 베르사유 궁전에 있던 동물들 중 쓸모가 많은 말과 소는 살리고 사자와 사슴영양은 없애려 했다. 그러자 학자들이 "문명 국가라면 공공(公共) 동물원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메나주리'가 보통 사람들을 위한 동물원으로 탈바꿈했다.

대만의 젊은 소설가는 이름난 유적지 대신 전쟁의 참화가 휩쓴 베를린동물원, '동물 외교'의 중심지였던 베이징동물원, 밤에만 문 여는 싱가포르동물원까지 2년간 세계 각국의 오래된 동물원 14곳을 여행하면서 역사의 흔적을 파고들었다. 인간과 도시는 물론이고 문학작품, 그림, 대중음악까지 솜씨 좋게 아울러서 읽고 나면 산책하듯 세계 일주를 한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