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의 비밀의 책장] 산티아고로 가는 길… 진짜 '인간다움'을 배우다

얼마 전, 영화 '나의 산티아고'를 봤다. '산티아고 길에서 나를 만나다'라는 책을 원작으로 삼은 독일 영화였다. 보는 내내, 책 속 문장과 영화의 장면과 환영 같은 기억들이 3차원으로 뒤엉켰다. 영화의 배경이 된 야고보길, 카미노라고도 불리는 길을 나도 걸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하페처럼, 무언지 모르는 것을 찾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지나친 자기 혹사로 번 아웃이 된 유명 코미디언 하페는 시종일관 투덜거리며 카미노를 걷는다. 끊임없이 완주에 대해 회의한다. 수없이 걷는 의미를 묻는다. 그러다 산골 마을 교회 앞에서 유년 시절의 자신과 만난다. 나 역시 그 곳에서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벤치에 앉아 잠깐 조는 사이 꿈을 꾸었고, 단발머리를 나풀대며 바쁘게 뛰어가는 소녀를 만났다. 꿈에서 깨어난 후 사방을 두리번거렸던 기억이 있다. 교회 건너편 건물의 껌껌한 창을 건너다 보며 잠꼬대처럼 혼잣말을 했던 기억도. 그때, 그 촌뜨기 여자애는 무엇을 향해 뛰어갔던가. 지금은 어디쯤에 와 있는가. 이제부턴 어디로 가야 하나.

카미노는 프랑스 생장피드포르에서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약 800㎞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을 걷는 자는 세 가지와 싸워야 한다고 전해진다. 처음엔 육체와의 싸움, 다음은 정신과의 싸움, 마지막은 영혼과의 싸움. 한 발짝도 더 디딜 수 없을 것 같은 육체적 고통을 극복하면 '이 길을 왜 가는가'하는 회의가 찾아들고, 마지막엔 내 안에서 튀어나온 진짜 '나'와 싸워야 한다. '나'는 온갖 모습을 하고 부딪쳐온다. 상처받은 나, 두려워하는 나, 좌절하는 나, 분노하는 나…. 수많은 나와 맞닥뜨리는 와중에 찾아드는 것이 울음이다. 폭발하듯 터지는 본성의 울음.

하페는 길 위에서 꺼이꺼이 운다. 어린애처럼 소리 내어 운다. 나도 그랬다. 우는 동안, 나를 공격해대던 온갖 '나'가 나를 통과해서 멀어져가는 걸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울음은 신이 인간에게 준 치유의 묘약인지도 모르겠다.

하페는 말한다. "무엇이 우리를 인간적으로 만드는가. 우리의 작은 결점들과 큰 실수들, 그것들이 없다면 우리 모두는 걸어다니는 신들이다."

우리는 때로 고독해져야 한다. 길을 떠나든, 자신 안으로 침잠하든, 그 밖에 어떤 방식으로든, 온전하게 홀로 될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겸허해진다. 그래야만 이 '인간적'인 생에 대한 부끄러움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