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역사가 꼬아낸 철조망 안의 사람들

포로들의 춤 | 최수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80쪽 | 1만2000원

243쪽을 보라. 소설은 이 한 장의 사진에서 출발했다. '유엔 재교육 캠프에서의 스퀘어댄스.' 사진가 베르너 비숍이 1952년 겨울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찍은 흑백사진 속 가면을 둘러쓴 포로들이 서로의 팔을 엮고 미국 민속춤을 추는 장면은 건너편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 모형만큼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들은 철조망 안에 있다. 한 남자가 이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그 역시 역사와 역사가 꼬아낸 관계의 철조망 안에 있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발표된 중편소설 세 편을 묶은 이번 연작소설집의 복판에 6·25전쟁이라는 비극이 자리한다. 소설은 1950년대 포로수용소('거제, 포로들의 춤')부터 군대와 1980년대 대학가 시위 현장('거절당한 죽음'), 2002년 월드컵 당시 서울시청 앞 광장('줄무늬 옷을 입은 남자')으로 한국 현대사의 시계추를 옮겨다니며 세대로 유전되는 낮과 밤을 기록한다.

그 상징적 물체로 철조망이 세 작품을 꿰뚫는다. 철조망은 1950년대 포로수용소의 '치명적 줄무늬'로 탄생하거나, 1980년대 대학 캠퍼스와 개천 사이를 가로지르는 경계로 기능하면서 인간의 자유 보행을 저지하는 존재감을 통해 전쟁의 상흔을 보여주는 것이다.

데뷔 35주년을 맞은 작가는 소설 말미를 통해 강력한 메시지를 설파한다. "적대감을 가질 때 인간들은 서로에게 치명적인 철조망이 된다. 가볍게 스치기만 해도 상처가 생긴다. 그러나 그 철조망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 담요도 누비옷도 없이 맨몸으로 끌어안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