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대 중년, 열대어에 빠지다

세 자녀가 결혼한 뒤 남편과 단둘이 사는 이명진(63)씨는 최근 '구피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작년 말부터 열대어의 한 종류인 구피를 키우면서 지인들에게 새끼를 자주 분양해왔기 때문이다. 이씨는 "작은 새끼 물고기가 큰 물고기에게 잡아먹히지 않도록 어항을 분리하면서 주변에 나눠주는 것"이라며 "자식들이 모두 집을 떠나 외로웠는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며 새끼도 낳고 가족을 이루는 아이(열대어)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진다"고 했다.

개와 고양이 중심이던 국내 반려동물 시장에서 최근 열대어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관상어협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 관상어 시장 규모는 5000억원 정도로, 연간 10%의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50대 이상 중년·노인층이 중심을 이룬다. 소셜커머스 티몬의 경우 올해 상반기 관상어를 비롯한 작은 동물 매출이 작년 하반기에 비해 27배 늘었다. 어항 풀 패키지가 5000개 이상 팔려 나가면서 '관상어·소동물' 카테고리를 신설하기도 했다.

'형태와 색감이 예뻐 보고 즐길 수 있는 물고기'란 뜻의 관상어(觀賞魚)는 애완용으로 키운다는 뜻에서 '아쿠아 펫'(aqua pet)이라 불린다. 열대·아열대 지방의 따뜻한 해수나 담수에서 사는 열대어 중 구피·베타·네온테트라 등 초보자도 쉽게 기를 수 있는 어종 선호도가 높다. 따로 수온을 관리할 필요도 없고, 몇천원짜리 물고기밥 한 통이면 두세 달 정도를 날 수 있어 큰돈이 들지 않는다.

6개월에 새끼를 50마리 이상 낳을 정도로 번식력 강한 구피가 특히 인기. 구피를 키우는 지인으로부터 새끼를 분양받아 키우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단골 미용실 주인에게 구피를 얻었다는 신애순(75)씨는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며 "부모님과 함께 금붕어를 키우던 추억이 떠올라 뭉클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열대어 유행을 이끄는 50~60대는 1980~90년대 집에서 금붕어나 비단잉어, 열대어 등을 키웠던 경험이 있어 관상어와 친근한 세대다. 당시 '집에 열대어를 키우면 돈이 들어온다'는 속설이 돌면서 열대어 열풍이 불었지만 IMF 사태를 계기로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큰 동물을 기르는 데 비해 시간과 노력, 비용이 덜 들고 외로움도 달랠 수 있어 다시 사랑받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 따르면 50~60대 베이비붐 세대의 애완동물 관련 상품 매출이 최근 몇 년 사이 매년 20% 이상 크게 성장하고 있다. 은퇴 후 반려동물을 기르는 50~60대 베이비부머를 뜻하는 '펫부머'(반려동물＋베이비부머)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심홍석 한국관상어협회 회장은 "예전에는 열대어 어항 물 한 번 가는 데 온종일 걸릴 정도로 손이 많이 갔지만, 관련 산업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키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열대어가 인기를 끄는 또 다른 이유는 인테리어 열풍 덕분이다. 열대어가 사는 어항이 집 안 인테리어 소재처럼 활용되는 것. 수초·유목·산호사 등 자연 재료에 레고블록·모형집 같은 장식품을 넣어 독특하게 꾸민다. 공기 정화와 실내 가습은 물론 아이들의 정서 순화를 돕는 기능을 한다.

산·계곡·정글 등 테마를 정해 수초를 어항 안에 예술적으로 배치하는 '수중 레이아웃'을 배우려는 사람도 많다. 수중 레이아웃 전문업체 '트윈스타'가 작년부터 열고 있는 '수초 아카데미'는 전국에서 수강생이 몰려들 정도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장규섭 트윈스타 대표는 "인터넷 블로그나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와 경험, 조언을 나누면서 관상어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