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편곡한 은지화 어떤가요?"

같은 음식이라도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더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경우가 있다. 전시도 그렇다. 작품을 어떤 공간에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감동의 깊이가 달라진다. 주로 '상품'을 심사 대상으로 삼아온 디자인상이 최근 '전시'로 분야를 넓힌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올 초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김태수 건축전'이 얼마 전 세계적 디자인상인 '레드닷'을 수상했다. 이번 수상을 포함해 국립현대미술관은 최근 5년간 10여 차례 전시 디자인상을 받았다. 그 중심축에 김용주(36)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운영 디자인팀장이 있다. '김태수 전', 2014년 '최만린 조각전'(일본 굿디자인어워드), 2012년 '올해의 작가상'(독일 iF디자인상) 등 9개 디자인상을 이끌어낸 주역이다.

"작품이 '악보'라고 하면 기획자는 '지휘자', 전시 디자이너는 '편곡자'예요. 같은 곡도 편곡에 따라 원곡을 살릴 수도 망칠 수도 있는 것처럼 디자인에 따라 전시가 확 달라질 수 있어요." 최근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이 열리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만난 김 팀장이 말했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관람 후 "우리나라 전시 디스플레이가 언제 이렇게 발전했느냐"고 극찬했던 '이중섭 전'도 그의 손길을 거쳤다. 김 팀장은 홍익대 산업디자인과를 나와 국립민속박물관과 미국 보스턴 피바디 에섹스 박물관에서 일했다.

그가 생각하는 전시 디자이너의 역할은 '1차 관객'이자 '연구자와 관객을 이어주는 다리'. "미술관 사람들끼리만 즐겁다고 훌륭한 전시라고 착각할 때가 잦다"며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수신자 위치가 아니라 송신자 위치에서 객관적으로 전시를 바라보려 한다"고 했다.

관객에게 친절하면서도 전시의 맥락을 뒷받침해주는 장치들을 배치한다. 2012년 '한국의 단색화'전('레드닷상' 수상)에선 바닥에 '뷰포인트'를 표시했다. 기획 의도에 맞게 여러 작품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위치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김태수 전'은 한 건축가의 일생을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여주기 위해 '회랑(回廊)' 형태로 구성했다. '이중섭 전'은 "'(작품 수가) 적다, (크기가) 작다, (작품이) 익숙하다' 이 세 가지와 싸운 전시"라고 했다. 해법은 '박물관식 전시'. 작품 하나하나를 유물처럼 관람하도록 배치했다. 엽서만 한 은지화는 은 입사 유물처럼 유물장에 넣어 집중해서 보게 했다.

소 그림 5점이 나란히 붙은 2층 전시실 벽에도 비밀이 있다. "'내가 가진 소가 최고의 소'라는 소장가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자존심 대결이 있었어요. 그야말로 치열한 '소싸움'이었죠." 벽면을 5등분 해 돌출시키고 각각의 벽에 '소' 그림을 하나씩 걸었다. 절개된 면을 따라 관객들이 무의식적으로 모든 소 앞에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였다. "스마트폰으로 손가락 몇 번 까딱하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시대에 미술관으로 직접 오는 관객에겐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가치를 선사해 드려야 해요. '현장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게 제 몫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