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싸대기 장면 5번이나 찍어… 엄청 아팠죠"

"한국에선 저 같은 외국인 배우에게 맞는 배역이 5년에 한 번쯤밖에 안 들어와요. 그래서 아예 제가 만들기로 했죠."

31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한·중·미 합작 웹드라마 '드라마월드'를 제작하고 주연으로 나온 숀 리처드(32)를 만났다. 최근 영화 '인천상륙작전'에서 맥아더 장군의 참모장교로 출연했던 그는 한국콘텐츠진흥원 '국제방송영상견본시(BCWW) 2016'에 발표자로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

'드라마월드'는 한국 드라마 열혈 팬인 미국 소녀가 평소 즐겨 보던 드라마 속으로 들어가 겪는 일을 담은 판타지다. 동영상 사이트 비키(Viki)에서 인기를 끌며 '최단 기간 최다어 번역 작품'이 됐다. 그는 "외국 한류 팬 입장에서는 한국 드라마 세계로 빠져드는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하기 쉬워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며 "하루 만에 30개국 팬들이 자국 언어로 자막을 달았다"고 자랑했다.

국내에선 상투적인 한국 드라마의 설정을 비틀어 화제였다. "포기김치로 얼굴을 맞는 '김치 싸대기' 신을 5번이나 찍었어요. 엄청나게 아팠죠. 감독이 저랑 친구고 함께 대본 작업을 하면서 다툴 일도 많다 보니 골탕 먹이려고 계속 찍은 것 같아요. 하하!"

그는 영국계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인이지만 한국 드라마를 보며 연기에 대한 꿈을 키웠다. "미국 LA에서 자라나면서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 '천국의 계단'을 보시는 어머니 덕에 배우에 대한 꿈을 키웠어요. 10~15년 전만 해도 미국 TV에서조차 아시아계 배우는 거의 나오지 않았죠.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동양계인 나도 배우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발음은 어눌하지만 조리 있는 한국말이었다. 2007년 한국에 온 그는 드라마 '제중원'(2010)에서 서양 의사 알렌 역으로 데뷔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배역은 많지 않았다. 그는 "덕분에 '드라마월드' 같은 작품을 직접 만들 생각을 했으니 잘된 일"이라고 했다.

왜 한국 드라마를 배경으로 만들었을까. "한류 팬들은 그냥 평범한 팬이 아니에요. '수퍼팬(super-fan·광팬)'이죠. 당당하게 친구들에게 한국 드라마 보라고 권하면 정말 열정적으로 찾아봐요. 한국 드라마의 순수하다 못해 순진할 정도인 사랑 이야기, 만화에서 나온 것처럼 티 없이 깨끗한 피부의 아름다운 배우들에게 빠지는 거죠. 30~40대 여성들은 '태양의 후예' 송중기 같은 캐릭터가 남성적 매력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젊은 백인 친구들은 또 다르고요."

그는 워낙 드라마 반응이 좋다 보니 비키와 넷플릭스 같은 업체들도 다음 시즌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영화·드라마를 볼 수 있는 비키 같은 중소 규모 업체가 늘어나면서 '드라마월드' 같은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수요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차기 시즌 만들게 되면 계속 한국 드라마를 배경 삼아 만들 겁니다. 한국 드라마 공식인 '기억상실' '갑작스러운 암 투병' 같은 요소도 넣어서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