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밟혔다고 칼 휘둘러… 급증하는 '폭주노인'

지난 31일 오후 4시 50분쯤 경기 군포시 산본역 부근의 한 카페로 허름한 복장의 남성이 뛰어들어왔다. 이 남성은 카페에 앉아 있던 남녀에게 다가가 몇 마디 말을 걸다가 갑자기 10㎝ 길이의 커터칼을 꺼내 휘둘렀다. 이 사건으로 A(77)씨는 턱과 목 사이가 베이는 중상(重傷)을 입었고, 이를 말리던 B(여·63)씨는 칼에 팔뚝을 찔렸다. 두 사람 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라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이날 칼을 휘두른 남성은 80세 김모씨였다. 그는 "콜라텍에서 춤을 추다 A씨가 내 발을 밟아 다치게 한 적이 있어 사과와 함께 치료비를 요구하려고 찾아간 것"이라며 "겁만 줄 생각이었는데 충동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고 말했다. 김씨는 B씨와도 콜라텍에서 만나 서로 아는 사이였다고 한다. 경기 군포경찰서는 김씨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를 조사하는 한편, 특수상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1일 밝혔다.

급속한 인구 고령화에 따라 60세 이상 연령층의 범죄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노약자(老弱者)로 불리며 주로 '범죄 피해자'였던 연령층 일부가 가해자로 속속 변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입건된 피의자 171만2435명 중 61세 이상이 15만902명으로 8.8%를 차지했다. 지난 2009년에는 전체 피의자 가운데 61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5.7%였다.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在所者) 고령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수형자 가운데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9.5%였다. 지난 2005년(3.1%)과 비교하면 10년 만에 3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이다.

60대 이상이 저지르는 살인과 방화(放火) 같은 강력범죄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11월,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한 요양병원에서 박모(71)씨가 옆 병상(病床)에 누운 채 거동도 하지 못하는 80대 남성을 과도로 찔러 숨지게 했다. 박씨는 평소 자신에게 막말을 한다는 이유로 앙심을 품고 있다가 범행을 저질렀다. 같은 달에는 김모(83)씨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해 법원이 명도집행(법원 명령에 따라 거주자를 내보내는 것)을 진행하자 서울중앙지법 청사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지르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61세 이상 강력범죄 피의자는 2009년 680명에서 2014년 1869명으로 5년 만에 거의 3배로 늘었다. 전체 강력범죄 피의자 중 61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3.2%에서 7.5%로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된 일본에서는 이미 이 문제가 공론화돼 있다"며 "우리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 작가 후지와라 도모미(藤原知美)는 지난 2014년 고연령층 범죄문제를 '폭주노인'이라는 책으로 진단했다. 그는 이 책에서 "노인들이 거칠어지는 것은 급격한 사회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현대사회에 대한 부적응과 고독한 삶을 알리는 절규가 거친 방식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썼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는 올해 초 발표한 '치안전망 2016'에서 "올해 전체 범죄 발생 건수는 줄어들겠지만 60대 이상이 저지르는 범죄는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고령층의 범죄는 빈곤이나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 반감(反感) 등이 원인일 때가 많다"며 "'폭주 노인' 문제를 막기 위해선 고령층 자체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소통하는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폭주노인(暴走老人)

일본의 유명 작가 후지와라 도모미(藤原知美)가 지난 2014년 낸 책 제목으로 고령 범죄자들을 가리킨다. 저자는 고령화사회에서 소외된 노인들이 고독감 때문에 폭력적으로 변해간다고 진단했다. 최근 고령층에 의한 각종 강력 범죄가 늘어나며 한국에서도 '폭주노인'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