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음식 나르면, 식탁 서빙은 사람이

지난 2일 싱가포르 이스트코스트에 있는 롱헝 시푸드 레스토랑. 간판에 '최초의 자동화 로봇 서비스 음식점'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키 1m50㎝에 앞치마와 스카프를 두른 로봇 두 대가 빨간 눈을 반짝이며 음식이 담긴 접시를 나르고 있었다. 루시와 메리라는 이름을 가진 로봇들이 바닥에 깔린 유도선을 따라 지정된 테이블 앞에 멈춰 서면 인간 종업원이 음식을 손님 앞에 내려놓았다. 로봇에서 "안녕하세요. 음식이 도착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라는 중국어 인사말이 흘러나왔다. 이 로봇은 생일을 맞은 손님에게 축가도 불러준다.

이 레스토랑은 올해 초 개업하면서 싱가포르에서는 처음으로 로봇 웨이트리스를 도입했다. 홍보 효과도 있지만, 무엇보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이 식당 프랭크 리우 지배인은 "이 정도 규모의 음식점이라면 서빙 직원이 15명 필요하지만 로봇 덕분에 8명만 있어도 된다"며 "로봇은 휴식 시간이나 병가가 필요 없는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을 겪고 있는 싱가포르에서는 자동화의 물결이 서비스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로봇이 싱가포르 음식점에 등장한 것은 2010년대 초반부터이다. 주방에서 사람 대신 볶음밥을 만들어주는 로봇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사람이 재료를 투입하면 로봇 팔이 부지런히 움직여 1~2분 안에 뚝딱 볶음밥을 만들어낸다. 다 쓴 식기를 회수하는 로봇도 등장했다.

제조업 공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로봇이 식당 접객까지 맡게 된 것은 심각한 인력난이 주요인이다. 지난 2011년 대규모 반(反)이민 시위를 경험한 싱가포르 정부가 저임금 외국 근로자 수입을 제한하면서 음식점 같은 서비스 업종이 직격탄을 맞았다. 대부분 식당 입구에는 '채용 중'이라는 공고가 항상 붙어 있다. 림루이샨 음식점연합회장은 "요식업체 90%가 인력난을 겪고 있으며,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아예 문을 닫는 음식점들도 늘고 있다"고 했다. 싱가포르는 실업률이 2% 안팎으로 구직자보다 빈 일자리가 더 많다.

하지만 비싼 가격과 제한적인 기능, 로봇 웨이터에 대한 거부감 등이 걸림돌이다. 롱헝 레스토랑에서 쓰는 로봇은 대당 1만8000달러(약 2000만원)에 이르지만 인간처럼 주문을 받을 수도, 음식을 테이블에 내려놓을 수도 없다. 이 식당 종업원은 "로봇이 무거운 음식을 운반하거나 눈길을 끄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속도가 느려 손님이 많을 때는 사람이 직접 나른다"고 했다.

싱가포르 전역에 다섯 개의 지점을 둔 팀버 라이브 카페는 지난해 초 음식을 나르는 드론을 시험 운행해 화제가 됐다. 원래는 올해부터 드론 웨이터를 전 지점에 도입할 계획이었지만 여러 이유로 미뤄지고 있다. 이 카페 관계자는 "드론 가격이 만만치 않은 데다 드론이 카페 안을 날아다니는 걸 싫어하는 손님도 있어서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의 벤처 회사가 제작한 드론 웨이터 가격은 대당 4만~8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싱가포르 정부가 외국 노동자를 수입하는 대신 로봇 도입을 적극 장려하고 있어 로봇 웨이터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싱가포르는 첨단 기술을 활용해 생산성을 높인 업체에 비용의 최대 70%를 보조해주고, 로봇 기술 개발에 올해부터 3년간 4억5000만싱가포르달러(약 37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CNBC는 "앞으로 5~10년 안에 싱가포르의 음식점에서 로봇 종업원이 보편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